장기간 여행을 다니면서 오만 일을 다 겪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좀 심하다 싶은 경험을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사가다에서 바나웨까지 갔다가 누에바 비즈카야(Nueva Vizcaya)를 거쳐 누에바 에시하(Nueva Ecija)의 제너널 트리노(General Tinio)에 왔는데 에어비앤비 숙소가 사진이나 설명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12월 마지막 날이라 뭔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었지만 누에바 에시하 사람들은 일찌감치 가게 문을 닫는 것인지 도무지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이 근처 큰길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 큰길을 찾느냐고 한 시간 넘게 헤매니 지쳐서 저녁을 먹을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스트를 욕하기도 애매한 것이 호스트라고 해서 막사이사이 에어필드에서 갑자기 차량 진입을 금지하리라는 것을 알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낯선 동네를 돌고 또 돌아 겨우 호스트를 만났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호스트를 만난 뒤로도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려야 했는데, 길은 꽤 넓었지만 주변이 모두 농장 지대인지 어두컴컴하니 불빛 하나 볼 수 없었다. 더욱 슬펐던 것은 저녁도 못 먹고 간 숙소의 상태였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적힌 '미나룬가오 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망고 농장'이라는 설명을 보고 너무 기대를 했던 것이 문제였다. 호주 사람이 호스트라서 그런지 사진도 괜찮아 보이고 리뷰도 좋으니 좀 멀지만 가보기로 한 것인데, '2개의 프라이빗 럭셔리 룸(Two Private Luxury rooms)'이라고 적힌 것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객실 도어는 잠그고 잘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지만, 문조차 잠글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차로 인적 없는 비포장도로를 10분 넘게 달려 도착했으니 누군가 들어오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문 대신 망사로 된 커튼이 드리워진 화장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방안은 비교적 깔끔했지만, 마치 사진 배경으로 쓰기 위해 만든 공간 같다. 아직 호주 여행을 해보지 않아서 호주 사람들의 생활을 잘 모르지만, 필리핀에서 망고 농장을 운영하는 호주 사람이라고 해서 시멘트를 이용해 직접 만든 듯한 A4용지 크기의 세면대와 유아용에 가까운 크기의 변기를 쓸 것 같지는 않은데 모든 것이 그런 식이었다.
다행히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무리하게 움직인 덕분에 길거리에 눕혀 놓아도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다. 호스트에게 뜨거운 물을 얻어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뒤, 온수조차 나오지 않는 좁은 화장실에서 샤워 비슷한 것을 대충 마치고 곧장 잠이 들었다. 호스트가 들판 끝 쪽을 가리키며 어디라고 알려주면서 오늘은 12월 31일이니 거대한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 것이 떠올랐지만,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힘이 전혀 없었다. 잠결에 멀리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새들의 소리와 함께 새해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였을 뿐,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호스트를 불러 사정을 설명하고, 물이 나오자마자 대충 머리만 감고 체크 아웃을 했다. 전날 숙소 예약을 할 때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서 망고 농장을 돌아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필리핀 누에바 에시하 여행] 에어비앤비를 통해 망고 농장에서의 하룻밤을 예약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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