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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19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2020년 2월 2일 마음이 배부르던 날. 살다 보면 남의 배에 들어가는 것이 내 배에 들어가는 것만큼 배부른 날도 있다.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2020년 2월 2일- Copyright 2020.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all rights reserved - ※ 저작권에 관한 경고 : 필인러브(PHILINLOVE)의 콘텐츠(글. 사진, 동영상 등 모든 저작물과 창작물)는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필인러브의 콘텐츠를 개인 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올리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전 동의 없이 내용을 재편집하거나, 출처 없이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실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2020. 2. 13.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화살과 티나파이 시작점을 알 수 없는 물안개가 광활한 들판을 가득 감싸고 있었다. 하늘은 이내 푸르게 개었지만, 안개 덕분에 길이 참기름을 바른 듯 미끄러워져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타루칸 마을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지만, 언덕길이 온통 크고 작은 돌투성이라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언덕을 오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따족 아이들은 날아가듯 뛰어가서는 "나를 잡아보세요!"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가끔은 발걸음을 멈춰 나를 기다려주면서 깔깔 비눗방울과 같은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듣기가 좋기만, 그렇다고 흙투성이 언덕길을 오르는 일이 쉬워지진 않았다. 가끔 꼬마 녀석들과 속도를 맞춰 언덕을 오르는 욕심을 내보지만 번번이 실패한.. 2020. 2. 12.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기를 위한 리본 머리끈 내가 준비한 추첨 선물상자 안에는 고작 치약 두 개와 물병 두 개, 그리고 초코파이 몇 개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물건을 앞에 놓고 마을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이었다면 그걸 누가 탐을 내겠는가 싶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타루칸 마을에서는 이 물건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가 퍽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집단이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아주머니 세 분이 집중적으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그 언쟁이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부끄러워서 내 옆에서 말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으니 제법 친해지게 된 모양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카무스타(잘 지냈어요)?"라고 물어오면 간신히 "마부티(잘 지냈습니다)"라고.. 2020. 1. 25.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절대로'와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 고백하자면, 나는 혼잡한 곳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산토 니뇨 축제 따위에 가면 너무 북적인다고 불평을 해보기도 하지만, 내심 좀 복잡하면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마닐라 특유의 지저분함과 북적댐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꽤 사랑하고 있었다. 좀 병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물건을 정리하는 주제에 주변 사물이 두서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 모순적인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뭔가 재밌는 것을 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뭐든 상대적이니까 그런 것이지만 나의 결점 따위는 매우 사소하게 여겨진다고 할까. 아니면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존재가 있다는 안.. 2020. 1. 25.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다그다그(dagdag)가 있는 빵집 "안녕! 나 왔어!""어, 앤이다!" 한 달 만의 방문이었지만, 아이는 내 이름을 정겹게 불러주었다.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안에서 빵을 굽던 꾸야가 바깥으로 나와 나를 보면서 빙글빙글 웃는 것을 봐서는 나처럼 매달 와서 빵을 모두 사 가버리는 외국인 손님이 또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갓 구운 판데살 빵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빵을 많이 사려나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스스로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신통하게 여겨질 정도로 어린 꼬마 녀석들까지 기꺼이 어른들 일을 돕는 곳이 산타 줄리아나 마을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또 크면 큰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두.. 2020. 1. 25.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타루칸 마을의 패셔니스타 필리핀은 일 년 내내 덥다고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겨울 코트를 입지 말라는 법은 없다. 패션은 개인의 자존심이니, 타루칸 마을에도 멋쟁이는 존재한다. 내가 사다 준 거울이니 머리끈은 라면이나 빵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호응이 좋았다. 타루칸 마을에서 옷을 대충 입었다고 흉볼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도 한껏 멋을 부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연말이었고 나는 뭔가 괜찮은 것을 사고 싶었다. 슈퍼 매대를 두 바퀴나 돌고 고민하다 고른 것은 세숫비누와 빨랫비누, 그리고 매직사랍이란 조미료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에서 보내준 원고료를 손에 들고 그 금액에 맞추고자 꽤 고민하며 고른 것이다. 초코파이를 사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듯하여 빵집에 가서 빵을 한가득 사고, 빵집.. 2020. 1. 3.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SM 슈퍼마켓에서 라면을 대량구매 하면 2050년이 되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를 들으면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텀블러며 장바구니 따위야 늘 챙겨 다니고 있지만, 비닐봉지 사용을 완전히 멈추기란 쉽지 않다. 생선이며 육류를 살 때면 비닐봉지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 가게에 식료품 운반을 위한 그릇을 들고 가서 담아달라고 하면 된다고 듣기는 했지만, 언제 시장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늘 적당한 그릇을 챙겨서 다니기란 힘든 노릇이다. 개인적으로는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찬성하면서도 좀 불만이다.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는 매우 찬성이지만 대뜸 플라스틱 금지정책(plastic ban)부터 만들어 놓고 별다른 환경교육도 없이 .. 2019. 12. 27.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로사 파파의 그린 파파야 수프 (아이따족 원주민 집구경) 뭐든 자주 하면 익숙해지는 법이다. 타루칸 마을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군사 훈련이 있다고 마을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면 할 일이 없어 빈둥대기 일쑤였지만, 요즘 나는 군사 훈련이 있다고 하면 바로 로사네 집에 쪼르르 가버린다. 아이들 노는 것도 보고, 어슬렁대며 마을 사람들 집도 구경하고, 갓 태어난 강아지의 말랑한 뱃살을 만질 기회도 얻는다. 쌀을 가져다주어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밥도 얻어먹는다. 일전에 사다 준 소금이며 설탕을 다 먹었을지 궁금하여 앞집 부엌에 들어갔는데, 로사와 꼬마 녀석들이 동네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나의 방문을 사진 촬영의 기회로 여겼다. 때아닌 가족사진 촬영이 힘들어서 집 구경을 그만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로사가 꽤 신난 모습이라 잠자코 함께.. 2019. 11. 18.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아이따족 꼬마 아이들의 구슬치기 남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에게만 중요한 날이 있다. 바로 나의 멋진 생일이다. 하긴, 필리핀 사람만큼은 중요하게 여기지는 못한다. 세상에 필리핀 사람만큼 자기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으니 도무지 따라가기 힘들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대출까지 받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필리핀에 사는 인도 사람들이 주로 하는 활동 중 하나가 '붐바이 파이브 씩스 론(bombay 5-6 loan)'라고 부르는 일수놀이인데, 1,000페소를 빌리면 1,200페소를 갚아야 하는 식의 고리대금업이다. 이자가 상당히 비싸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붐바이의 돈을 쓰는 것은 대출받기가 은행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인도사람 돈은 갚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알려져 있고 .. 2019. 11. 17.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55kg의 접시와 작달비 "이 접시는 얼마예요?""잠깐 저울에 재보고 알려줄게." 2NE1이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불렀을 적의 이야기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로일로 다운타운에 갔다가 아주 어여쁜 그림이 그려진 접시를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릇은 내 관심사가 아니지만, 발걸음을 멈춘 것은 친구네 집에서의 저녁 식사가 생각나서였다. 당시 매우 친하게 지내던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함께 먹었는데, 이 친구는 정말 극도로 가난한 친구였다. 어찌나 가난한지 나에게 접시를 주고 나니 자신은 그릇이 없어서 일회용 반찬 뚜껑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밥을 먹어야 했다. 다음에 또 놀러 갈 때를 대비하여 친구에게 산뜻한 접시를 선물하고자 접시 가격을 물었는데, 가게 주인이 개당 개수가 아닌 kg당 개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돼지고기.. 2019. 11. 15.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마리아 아주머니와 왈라 바왈 라플 나의 사랑스러운 타루칸 마을 꼬마 녀석들은 내가 상자를 들고 "라인" 이라고 외치면 재빨리 학교 교문 앞에 가서 줄을 서는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들 입에 달콤한 초콜릿 과자를 넣어주고 싶어 "라인!"을 외치느냐고 바쁜데 수바릿 아저씨가 내게 와서는 종이봉투를 보여주면서 제법 심각한 얼굴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마을에 올 때마다 짐 나르는 것을 도와주는 아저씨라서 초콜릿 과자 나눠주는 일을 로사 아빠에게 맡겨놓고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수바릿 아저씨 이야기가 재미있다. 자신이 봉투 가득 카모테(고구마 비슷한 구황작물)를 가져다줄 터이니 가방을 바꾸면 안 되겠냐는 것이다. 카모테의 상태가 매우 좋다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내게 별로 솔깃하지 않았지만, 아저씨 얼굴에는 가방을 꼭 가지.. 2019. 9. 10.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산타 줄리아나 마을의 작은 빵 가게 필리핀 시골 마을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작은 빵 가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벽 일찍 일어나서 힘을 합해 빵을 굽고, 어린아이들까지 가족들이 모두 합세하여 돌아가며 가게를 지키는 빵 가게 말이다. 온종일 가게 문을 열어도 5페소 또는 6페소짜리 빵을 팔아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겠지만, 가족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소박하게 살아갈 정도는 될 것이었다. 아직 가게 간판조차 갖추지 못한 작은 빵 가게였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산타 줄리아나 마을과 같은 작은 마을에 새로 가게가 생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서 간판이 없어도 가게 홍보는 저절로 된다. 나와 같은 여행객도 빵 가게가 새로 생겼음을 알아챌 정도이니 마을 사람 모두 알 것이 틀림없었다. 대도시 마닐라였다면 사람들이 한창 바쁘게 움직일 저녁 .. 2019. 9. 9.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성가신 유리컵과 사진 인화 서비스 타루칸 사람들에게 유리컵을 선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어른들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아이였음이 틀림없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가르침 하나가 바로 물건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제대로 그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 같으니 하는 소리이다. 그러니까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지나친 욕심을 내고는 후회하는 일이 지금도 종종 생긴다. 완전 특가의 유리컵을 발견한 덕분에 유리컵을 320개 사는 것에는 큰돈이 들지 않았지만, 상자의 부피가 엄청났다. 게다가 비가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하늘은 비를 가득 품고 머리 위까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내게 아주 큰 비닐봉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파사이 리베르타르 시장의 비닐봉지 가게 언.. 2019. 9. 2.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마음의 가난을 막으려면 내 취미는 잡다한 글쓰기인데 사실 그게 직업이기도 하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글이 신통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신통하지 않은 글에 대한 수요도 있기 마련이라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꽤 운이 좋은 편이지만, 하기 싫어하는 것을 꼽으라면 그 역시 글 쓰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건 언제 무엇에 대한 글을 쓰느냐의 문제이다. 내가 쓰는 글이란 것이 대부분 블로그용 짧은 글이나 간단한 잡지 기사 따위라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하지만, 문학상을 받을 정도의 멋진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언가 뚝딱 완성되지는 않는다. 특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온종일 끙끙대며 커피만 하염없이 마시는 일이 생겨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막혀서 마무리하지.. 2019. 9. 2.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멈춤을 아는 만족이란 무엇인가? 내가 타루칸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는 까닭에 대해 굳이 적어보자면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웃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족을 배신할 만큼의 돈이나 돈을 버릴 만큼의 가족이 없는 데다가 절세 미인도 아니고 무엇인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단한 일로 기뻐하려면 기뻐할 일이 너무 띄엄띄엄할 인생을 사는 터라 사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도록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타루칸 마을에 머물 때만큼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울 것도 많다. 타루칸 마을 사람들이 식빵 80개를 세는 일에도 한참 걸리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식빵 80개를 나눌 때는 10개씩 8줄로 만들어 세면 편하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는 해도, 어.. 2019. 8. 19.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바나나 수확과 알비노 카라바오 소 피나투보 화산 주변의 넓은 평야를 꽉 채운 것은 아침의 냄새였다. 아침 특유의 상쾌함에 시원한 바람의 냄새, 비를 촉촉하게 담은 풀의 냄새, 들판에 놓아 기르는 카바라오 소들이 움직이는 냄새가 가득 엉켜 있었다. 어두운 밤을 보내고 막 잠에서 깬 바람결은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나는 매사에 싫증을 매우 잘 느끼는 편이지만, 타루칸 마을에 가는 일만큼은 좀처럼 질려 하는 법이 없었다. 타루칸 마을에 매달 드나든 지도 2년이 훌쩍 넘어 있었지만, 마을로 가는 일은 언제나 설레어서 한 달 정도가 되면 마을에 가야지 하는 마음에 심장이 간질대곤 했다. 마을에 가져다줄 장을 보고, 새벽녘에 일어나 덜컹대는 4X4를 타고 마을까지 가는 일이 고단하기는 하여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지면 그깟 고단함 정도야.. 2019. 8. 19.
[필리핀 딸락] 뉴클락시티(New Clark City)의 개발과 동남 아시아 경기 대회 "요즘 일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어! 다들 경기장 짓는 곳에 일하러 가버렸다니까!" 피나투보 화산에 사는 타루칸 마을 꼬마 녀석들을 보려고 3년째 매달 딸락(Tarlac)에 가고 있지만, 요즘처럼 카파스(Capas) 지역이 활기차 보이는 일은 처음이다. 무언가 자꾸 건물이 들어서는 것 같더니 산타 루시아 바랑가이 근처로는 도로 공사까지 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공사 규모가 대단히 큰 것이 동네 사람들을 위한 작은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슨 도로를 만드는 것이냐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알빈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뉴클락시티(New Clark City)로 가는 도로라고 알려준다. 연말이면 지금 공사하는 도로를 통해 동남아시아 게임을 위한 스포츠 경기장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그러니까 2019년.. 2019. 7. 25.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햇살을 사랑하는 초록 바나나 이 나이에 깨닫기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늘 좀 느리게 깨닫는 편이라서 늦게라도 깨달으면 되었다, 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요즘 나는 자연의 신비란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방 안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검은색만 슬금슬금 쌓이던 바나나였다. 타루칸 마을에서 받았을 때만 해도 진한 자연의 색으로 새벽녘의 차가움을 그대로 품고 있었는데, 바나나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선명하고 어여쁜 초록색을 잃고 점점 시커멓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색깔이 미워진 바나나는 맛도 참 없었다. 아니,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먹지 못할 음식에 가까웠다. 익지 않은 야생의 바나나는 덜 익은 땡감보다도 떫었다. 어찌나 떫은맛인지 입안에 든 것을 황급히 뱉어내었을 정도이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할 듯했다. .. 2019.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