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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치] 필리핀 최대의 미디어 기업인 ABS-CBN 방송사는 왜 문을 닫을까?

by 필인러브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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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최대 방송사

필리핀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그룹

필리핀의 거대 미디어 기업

이 거창한 설명은 모두 필리핀 ABS-CBN 그룹을 표현하는 수식어이다. ABS-CBN 방송사는 필리핀 전국에 25개의 직영국, 38개의 중계국, 8개의 제휴 방송국을 운영하던 필리핀 최대 민영 미디어 그룹이다. 8천만 명이 넘는 필리핀인이 보고 있다는 방송사답게 뉴스와 예능과 드라마 등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영하는데 한국 드라마도 많이 방영한다. 지난 2019년 걸그룹 모모랜드가 필리핀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매니지먼트 협약을 맺은 방송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필리핀 뉴스에 ABS-CBN 방송사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 것은 두테르테 대통령과의 불화 때문이다.


■ 두테르테 대통령과의 불화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대선을 치를 때부터 ABS-CBN이 편파적인 방송을 한다면서 불만을 나타내왔다. 그 불만은 대통령이 당선된 후 더 강하게 표출되었다. 대선 기간 중 ABS-CBN가 자신의 선거 운동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자신이 펼치는 마약과의 전쟁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면서 ABS-CBN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냈는데, 방송 관련 사업권을 연장해주지 않고 문을 닫게 해버리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의회(하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면서도 "나 같으면 방송사를 팔아버릴 것"이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호세 칼리다 법무차관이 대법원에 ABS-CBN의 방송 사업권 취소 청원서를 제출했다. 호세 칼리다 법무차관은 청원서를 낸 이유에 대해 "모든 미디어 회사가 100% 필리핀 소유여야만 하는데, 외국인 투자를 받았으니 언론사의 외국인 소유를 금지하는 법을 위반한 것이다"라면서 취소 청원에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밝혔다. ABS-CBN 방송사에서 세금을 덜 냈다거나 노동 기준을 준수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최대 방송사인 ABS-CBN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 필리핀 의회와 방송 사업권


미국 식민지 시대였던 1931년에 만들어진 공화국 법(Radio Control Act /1963년 개정)에 따르면, 방송 네트워크(broadcasting network)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프랜차이즈 사업권 승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방송 사업권은 보통 25년 지속한다. 


1972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ABS-CBN은 강제로 방송국 문을 닫아야 했다. 1986년, ABS-CBN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간 뒤에야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1995년 3월 30일, ABS-CBN에서는 필리핀 방송법(공화국법 No. 7966)에 따라 25년간 유효한 방송면허를 발부받았다. 하지만 2020년 5월 4일에 만료되는 프랜차이즈 라이센스(franchise license)에 대한 연장(리뉴얼)은 쉽지 않았다. 필리핀에서는 방송 사업권 허가와 갱신 등의 권한을 하원 독점사업권위원회에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ABS-CBN 방송사는 지난해 중순부터 진작 의회에 방송 사업권 갱신을 요청했지만, 이 요청은 계속 의회에 계류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지난해 총선을 거치면서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 세력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판국이라 ABS-CBN에 대한 것이 빠르게 처리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언론 자유의 날(5월 3일)이 고작 이틀 지난 뒤, 5월 5일 필리핀 국가통신위원회(NTC)는 사업허가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는 이유로 ABS-CBN에 TV와 라디오 방송을 모두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날 ABS-CBN에서는 성명을 통해 NTC 명령에 따라 5일 밤 방송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NTC 명령의 적용을 받지 않는 케이블 뉴스 채널 ANC는 계속 방송될 예정이라면서 TV와 라디오가 아니라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프로그램을 계속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 


코로나19 확진자가 만 명을 넘어서며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였다. 이런 와중에 가장 규모가 큰 방송국이 문을 닫게 생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는 이야기가 비난이 쏟아졌고, 필리핀 전국언론인연합회(NUJP)도 "두테르테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악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까지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시기적절한 정보 제공이 국민의 생명을 구한다며, 지금 ABS-CBN에 대한 운영 중단 명령을 내린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이 ABS-CBN 퇴출 결정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규모의 모임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방송사의 직원들과 지지자들은 방송국 앞에서 몰려 농성을 시작했다. 주민 발의안을 내기 위해 7백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ABS-CBN의 지상파 방송 운영 중단 문제로 떠들썩한 사이, 오로라(Aurora)와 소르소곤(Sorsogon) 등과 같이 지방에 사는 주민들이 태풍 암보(Ambo)에 대한 뉴스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외진 지역이라 유일하게 시청할 수 있는 TV채널이 ABS-CBN이었는데, 방송이 중단되면서 일기예보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라카냥 대통령궁은 ABS-CBN 방송사 문제가 두테르테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해리 로케(Harry Roque) 대통령 대변인은 "방송국 사업권 갱신에 대한 문제는 의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ABS-CBN 측이 법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자유이며, 방송권 철회에 대해 가능한 모든 법적 구제책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인터뷰로 의혹을 일축해 버렸다.


5월 13일, ABS-CBN에 올해 10월 31일까지 임시 방송 사업권을 허가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2차 독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3차에 걸친 독회를 거쳐야 한다. 상원까지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야 정식 법률로 공포되는 식이다. 그런데 ABS-CBN의 방송 사업권 갱신 문제가 상원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하원에서 법안을 철회하고 ABS-CBN에 방송 사업권을 다시 부여하는 법안에 대한 공청회부터 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20년 7월 10일, 하원 위원회는 ABS-CBN의 프랜차이즈 사업권의 갱신을 거부했다. 하원에서는 ABS-CBN가 방송 사업권에 대한 약관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라디오와 방송국을 운영 유지할 사업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이 문제가 언론의 자유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알린 브로사스(Arlene Brosas) 하원 의원이 하원위원회가 ABS-CBN에만 엄격한 기준을 부과한 것이 분명하다며 지적했지만, 결정을 번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ABS-CBN의 방송 중단이 결정된 지금 ABS-CBN은 2020년 8월 31일까지 사업을 접고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 ABS-CBN에서는 얼마나 많은 인원이 해고될 것인지에 대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11,0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필리핀의 여론조사 기관인 소셜 웨더 스테이션(SWS-Social Weather Stations)의  2020년 7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3명은 의회가 ABS-CBN의 방송 프랜차이즈를 갱신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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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House plenary vote on ABS-CBN franchise sought

https://news.abs-cbn.com/news/07/25/20/house-plenary-vote-on-abs-cbn-franchise-sought

· 13,000 back ‘people’s franchise’ for ABS-CBN

https://newsinfo.inquirer.net/1312019/13000-back-peoples-franchise-for-abs-cbn

· Group launches people’s initiative for ABS-CBN franchise

https://rappler.com/nation/group-launches-people-initiative-abs-cbn-franchise

· House committee denies ABS-CBN a new franchise

https://news.abs-cbn.com/news/07/10/20/house-committee-denies-abs-cbn-a-new-franchise

· ABS-CBN to lay off workers end of August

https://news.abs-cbn.com/business/07/15/20/abs-cbn-to-lay-off-workers-end-of-august






[필리핀 정치] 필리핀 최대의 미디어 기업인 ABS-CBN 방송사는 왜 문을 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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