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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절대로'와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

by 필인러브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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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혼잡한 곳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산토 니뇨 축제 따위에 가면 너무 북적인다고 불평을 해보기도 하지만, 내심 좀 복잡하면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마닐라 특유의 지저분함과 북적댐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꽤 사랑하고 있었다. 좀 병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물건을 정리하는 주제에 주변 사물이 두서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 모순적인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뭔가 재밌는 것을 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뭐든 상대적이니까 그런 것이지만 나의 결점 따위는 매우 사소하게 여겨진다고 할까. 아니면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존재가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소음 가득한 곳에 있고 싶어 바클라란 시장이나 차이나타운의 디비소리아와 같은 장소를 일부러 찾아갈 정도이다. 물론 매번 별 목적도 없이 차이나타운에  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매우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가기도 한다. 

비가 좀 내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이었지만 디비소리아 재래시장(Divisoria Market)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내 목적지는 액세서리 도매점. 누가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길을 물으면 대답을 머뭇댈 것이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어서 아이들 줄 조잡한 물건들을 사러 종종 찾아가는 가게이다. 연말이라 보통 때보다 좀 더 혼잡했지만, 인파를 헤치고 액세서리 가게까지 간 것은 머리끈을 좀 사고 싶어서였다. 거울을 사다 주어서일까, 다음 달에 올 때 무얼 좀 사다 줄까 묻는 내게 타루칸 마을의 아낙네들이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머리끈이었다. 나는 아주 흔쾌히 머리끈을 사다 주마고 약속을 했었는데, 디비소리아에서 거울을 사면서 머리끈 50개가 60페소밖에 하지 않았던 것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타루칸 마을의 여성분들을 외모 개선을 위해 기꺼이 천 페소를 투자하여 알록달록한 머리끈을 사기로 했다.

어림잡아 천 개 정도의 머리끈을 사서 시골 장터에 가서 좌판을 차려도 될 정도였지만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투투반에서 렉토 거리를 지나 로하스 다리를 건너 인트라무로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간 것은 마닐라 시장(mayor)인 이스코 모레노 도마고소가 이 일대를 깔끔히 정리했다는 신문 기사가 나온 뒤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마닐라 시장인 이스코 모레노가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어떤 정치적 업적을 남기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그가 마닐라 시장이 된 이후 거의 잠을 자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스코 모레노 시장은 페이스북에 거의 실시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올리는데 새벽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온종일 어찌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지 어떻게 저렇게 잠도 안 자고 돌아다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암튼, 이스코 모레노가 디비소리아 쪽을 연일 순찰했으니 거리가 깨끗해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문제는 높은 양반의 거리 순찰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이다. 강제적으로 시켜서 하는 일은 강제성이 사라지는 순간 그만두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디비소리아는 확실히 좀 정리되어 있었다. 디비소리아에 처음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뭐 이렇게 복잡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을 끄집어 내보면 놀랍도록 정돈되어 있었다. 999 쇼핑몰에서 마닐라 항구 방향으로 렉토 거리 끝은 여전히 혼잡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되어도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예전에 퀴아포 근처에 사는 아저씨에게 그 누가 등장해도 올드 마닐라 일대의 혼잡함은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절대로'라는 부사가 이번에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  필리핀 마닐라. 투투반 센터 
▲  복잡해 보이지만, 예전에는 더 복잡했다. 
▲  천 페소를 투자해서 머리끈 부자가 되었다. 도매라서 똑딱핀이 한 줄에 10페소밖에 하지 않는다. 
▲   고양이가 잠자기 좋은 오후 
▲  페디캅 아저씨의 시에스타 시간
▲   마닐라 차이나타운 
▲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 크리스마스 장식. 언뜻 보면 예쁘다. 
▲   이런 자전거 타기 능력을 익히고 싶다. 
▲ 마닐라  항구 근처  산 니콜라스 마을     
▲  필리핀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장식인 파롤(Parol) 가게   
▲  다리가 아파 택시라도 타고 싶었지만, 산 니콜라스 거리에서 택시 잡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마닐라 대성당( Manila Cathedral) 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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