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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문화&지리

필리핀 최대의 종교축제, 1월 9일 블랙 나자렌 축제의 유래(Feast of the Black Nazarene)



마닐라가 교통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차가 많이 막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차가 막히는 이유 중 하나로 필리핀 사람들이 걷기 싫어한다는 것을 빼놓기 어렵다. 날씨는 덥고 몸은 고단하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짧은 거리도 꼭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사람들을 내려주기 위해 몇 미터 간격마다 지프니가 정차하는 것만 봐도 필리핀 사람들이 얼마나 걷기를 싫어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몇 발자국조차 걷기 싫어해는 사람들을 위해 지프니가 도로 아무 데서나 정차하니 차가 막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든 예외는 있다. 걷기 싫어하는 필리핀 사람도 열심히 걸어갈 때가 있는데 바로 장례식과 필리핀 최대의 종교축제라는 블랙 나자렌 퍼레이드(Feast of the Black Nazarene Parade) 때이다.


매년 1월 초가 되면 1월 9일이 되기 전에 메트로마닐라개발청(MMDA)에서 꼭 올리는 공지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블랙 나자렌 퍼레이드로 인한 도로 폐쇄 공지이다. 축제 장소인 퀴아포 성당(Quiapo Church)을 중심으로 리잘파크 주변까지 도로 이용이 통제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축제 참여 인원이 엄청나다. 대체 그 누가 그 숫자를 정확히 알겠느냐만은 퀴아포 성당 측에서 밝힌 행렬(procession) 참가자 숫자만 약 5백만 명이다. 그런데 이 수백만 명의 신자들은 대단히 열성 신자라서 대부분 맨발로 퀴아포 성당까지 와서 스무 시간 남짓 행렬에 참여한다. 매년 축제 때마다 부상자가 나오고, 심지어 사망자가 나온 적도 있지만, 행렬 참여 인원은 해마다 늘어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천만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것이 블랙 나자렌(Black Nazarene)이라는 검은 얼굴의 예수상이라는 점이다. 미사 참여를 위해 어찌나 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며칠씩 노숙하다는 사람마저 등장할 정도라서 신흥 사이비 광신도 집단처럼 보이기도 하지도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블랙 나자렌 축제는 무척이나 역사가 길다. 검은 예수상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 사건은 무려 400년도 전, 그러니까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후반의 일이다. 멕시코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의 예수상이 하나 만들어졌다. 익명의 조각가가 만든 예수상은 적갈색과 노란색의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십자가를 들고  있는 실물 크기의 예수상이었다. 1606년, 멕시코의 가톨릭 성직자들은 대형범선인 갈레온(galleon)을 이용하여 이 예수상을 필리핀으로 운반하고자 했다. 그 뒤 이야기는 간단하다.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오는 도중 배에 화재가 발생했고, 불이 난 와중에도 예수상은 얼굴이 검게 변했을 뿐 멀쩡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예수상이 메스키트 우드 (mesquite wood )라는 나무로 만들어서 원래부터 좀 색이 어두웠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블랙나자렌이 마닐라에 들어온 이후에도 지진과 화재, 심지어 2차 대전 전쟁 때에도 거의 훼손되지 않았음에는 이견이 없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예수상을 성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우상 숭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기적을 원할 때가 있다. 그리고 블랙 나자렌 예수상은 팍팍한 삶에 필요한 기적의 상징이 되었다. 예수상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것까지는 믿지 않는다고 해도 퀴아포의 예수상이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필리핀 사람을 꽤 많이 보았는데 모두 굉장히 진심 어린 태도였다. 


현재 검은 예수상(블랙 나자렌) 진품은 마닐라 퀴아포 성당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1606년 당시의 예수상이 아니고 복제품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어쨌든, 그 예수상을 가까이하고자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은 매년 1월 9일이면 퀴아포 성당에서 연례 종교 축제를 연다. 맨발로 도심 행렬에 참여한 신도들이 원하는 것은 블랙나자렌을 만지는 것. 예수상을 가까이 한다고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 너무 맹목적이 아니냐는 이야기 따위는 축복을 받고자 하는 신도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파 속을 헤치고 예수상을 만지는 영광이 따라오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전날부터 혹은 며칠 전부터 성당 근처에서 노숙까지 하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예수상을 문지른 천을 갖는 것이다. 이 천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혹은 몸이 아플 때 마음의 위안으로 삼기도 한다. 다양한 모습을 한 복제품 예수상도 잔뜩 등장하는데, 이날 등장한 예수상은 설령 그것이 복제품이라도 성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무교인 나로서는 맨발로 퍼레이드에 참여해서 예수상을 가까이했다고 질병이 치료되거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기 어렵지만, 타인의 종교활동은 그 어떤 형태로든 존중되어야 하니 어떻게 그런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질문은 감히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1년에 한 번이고 신비로운 검은 예수상을 따라 적갈색과 노란색의 옷차림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인 마태의 어록에 따르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던가. 아무쪼록 그 열성적인 믿음만큼 축복이 가득하길. 




Traslación Procession of Quiapo 1913 (출처 : Lorenzo Búkas 페이스북 ) 



필리핀 마닐라. 퀴아포 성당(Quiapo Church). 정식 명칭은 Minor Basilica of the Black Nazarene 이다. 



블랙 나자렌의 날만큼은 신발이 필요없다. 모두 맨발로 퍼레이드에 참여한다. 











필리핀 최대의 종교축제, 1월 9일 블랙 나자렌 축제의 유래(Feast of the Black Naza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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