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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생활] 필리핀인의 새해맞이 풍습 - 폭죽 불꽃놀이

by 필인러브 202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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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선선한 날씨였다. 비콜 지역을 날카롭게 할퀴었던 태풍의 기억을 남긴 우기도 이미 끝났건만 12월이 되어서도 날씨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연일 날씨가 후덥지근했는데 모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코로나19 관련 뉴스만을 지긋지긋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2020년의 마지막 날, 검은 하늘에는 살짝 추운 기분이 들 정도로 차가운 바람만이 가득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1월 1일 카운트 다운을 하기 전에 집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는 풍습이 있다. 현관문은 물론이고 작은 창문까지 모두 활짝 열어두고 행운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창문을 여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역시 불꽃놀이이다. 불꽃놀이를 즐기며 도시가 들썩일 정도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그러니까 필리핀 사람들에게 차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일도 알고 보면 제법 의미가 있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집안의 사악한 기운이나 불운, 악령 따위가 나간다는 것이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처럼 아주 시끄럽게 새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불행이 집에서 나가도록 냄비며 프라이팬, 빈 깡통, 심지어는 총까지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온갖 것이 다 동원된다. 목이 아프게 소리를 지르고, 골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자동차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 토로톳(torotot) 나팔이며 부부젤라를 힘차게 부는 일도 빠질 수 없다. 필리핀 사람들의 토로톳 사랑은 실로 대단하여서 다바오 시티에서는 새해맞이 축제로 매년 토로톳 축제(Torotot Festival)를 열 정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가 이 소란스러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폭죽 따위를 사는 일에는 돈 쓰기를 아까워하는 나와 같은 이에게는 이런 것들이 부질없는 소비로 보인다. 그 돈으로 따뜻한 밥이나 한 그릇 사서 먹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악운이 나간다면야 대체 삶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게다가 필리핀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느냐고 물어보면 "그냥"이란 답을 해오곤 해서 그냥 1년에 한 번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문제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신년마다 폭죽으로 인한 부상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폭죽이 폭발하는 사고로 불이 나기도 하고, 사망자가 나오기도 한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내린 행정명령 중 하나가 폭죽 사용을 제한하는 행정명령(Ban on Firecrackers)이었는데, 바로 이런 폭죽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행정명령에 따르면 개인이 아무 장소에서나 폭죽을 터트리는 행위는 금지되고,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불꽃놀이가 허용된다. 

하지만 법보다는 오랜 습관의 힘이 더 큰 모양이다. 2021년 새해를 앞둔 날도 불꽃놀이는 여전했다. 작년처럼 밤새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폭죽을 터트리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는지 도시가 환하도록 불꽃놀이가 계속되었다. 하긴, 필리핀 사람들이 좀 시끄럽게 새해를 맞이한들 뭐가 나쁘겠는가. 그렇게라도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면, 혹은 그 소리에 나쁜 기운이 나간다면 잠시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 나로서는 올해만큼은 조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과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반가운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알기 어려웠다.

 


토로톳(torotot)
2021년 1월 1일 메트로 마닐라의 풍경. 10시 즈음부터 띄엄띄엄 시작하다가 자정 카운트다운 시간이 가까워지면 소리가 점점 과격해진다. 
예전에는 새벽까지도 불꽃놀이가 이어져서 시끄러웠는데, 올해는 한 시간 정도 만에 소리가 멈추었다.
평소에는 매우 조용한 주택가 골목도 이때만큼은 매우 소란스러워진다.  
불꽃놀이 규모와 비교해 소리가 어마어마하다.
팡팡!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악운이 모두 도망가기를.

 

[필리핀 마닐라 생활] 필리핀인의 새해맞이 풍습 - 폭죽 불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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