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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3천 켤레의 구두로 기억되는 퍼스트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

by 필인러브 202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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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이멜다의 만남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둘의 만남과 결혼 과정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꽤 많은데, 진짜인지 의심스러운 이야기도 상당수이다. 미인 대회 출신인 이멜다의 미모에 반해서 만난 지 11일 만에 결혼했는데 결혼 전 11일 동안 매일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다던가 마르코스가 이멜다에게 청혼하며 언젠가 대통령의 부인이 되게 해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든가 하는 식의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나중에 그들이 부부로서 함께 저지른 일들을 보면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이멜다의 손가락에 끼울 반지를 산다고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마르코스가 일본점령기(1942년~1945년)에 일본군에 대항하여 게릴라군으로 싸웠다는 식의 이야기는 본인의 주장 외에는 특별한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마르코스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부정 축재한 재산으로 12살 연하의 아내에게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마르코스는 1989년에 하와이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지만, 이멜다는 아키노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1991년 필리핀으로 돌아와서 90세가 넘은 지금까지 건재하며 마르코스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마르코스 일가는 아직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여전히 매우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필리핀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멜다는 필리핀으로 돌아온 뒤 일로코스 노르테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도 정치판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독재정권 시절에 필리핀이 발전했다며 자신은 사과할 것이 없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지만,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2016년엔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필리핀 경제를 거덜 낸 사치의 여왕인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구두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얼마나 구두가 많았는지 그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느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이멜다의 구두는 아시아 독재국가의 사치의 상징이 되었다. 8년 동안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1986년 피플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으로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멜다는 하와이로 서둘러 도망치면서도 미군 수송기 두 대를 빌려 보석과 금괴 등을 가득 가지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물건이 많았으니 모두 챙겨가지는 못했다.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하와이로 망명한 뒤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 지하에서 3천 켤레의 명품 구두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200벌의 드레스, 1,500개의 핸드백 등도 함께 남겨 있었는데, 상당수는 상표도 떼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구두에 대해 이멜다가 하와이에서 망명 중에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신발은 모두 필리핀 제품이었고 자신은 퍼스트레이디로서 국산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두를 수집했다는 식의 망언을 한 바 있다. 신발 상당수가 마리키나(City of Marikina)의 신발 제조 업체들이 준 선물이었다는 주장인데, 구두의 상표를 보면 이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대체 마리키나의 신발 제조 업체들이 어떻게 샤넬과 같은 디자이너 명품 구두를 선물하겠는가. 설령 신발 제조업체에서 선물로 주었다고 해도 문제인 것이 구두의 숫자가 수천 켤레에 이른다. 


마르코스 독재 정부가 무너지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11대 대통령)은 이멜다가 남긴 엄청난 양의 개인 소지품, 옷, 예술품 등을 이멜다의 사치를 보여주는 증거물로 말라카냥궁에 전시하였다. 국민들의 어려움을 뒤로 한 채 국가 자원을 빼돌리고 부정부패로 이룬 재산으로 얼마나 사치스러웠던 생활을 했는지 증거로 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피델 라모스 대통령(12대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친척이었다. 그는 구두를 말라카냥궁 지하창고에 보관했다. 어쨌든, 이멜다가 샀었던 물건들이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은 분명했다. 이멜다의 구두는 이리 저기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상당수가 손상되었다. 말라카냥 궁전 안 지하 선반 보관함에 처박혀 있는 동안 개미와 곰팡이로 잔뜩 망가진 이멜다의 신발이며 마르코스의 바롱 셔츠는 마닐라 국립 박물관으로 보내졌지만, 박물관에서조차 관리를 소홀히 하여서 비난을 샀다. 태풍으로 인해 천정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두 젖어버린 것이다. 후손들에게 독재 정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로 쓰기 어렵다면 차라리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주인을 제대로 만났으면 유용하게 잘 쓰였을 신발이 이리저리 창고에만 처박히다가 망가졌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맨발인 채 다니는 꼬마 아이들을 자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 관련 글 보기 :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11조의 재산

[필리핀 마리키나]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와 구두박물관(Marikina shoe museum)



▲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 이멜다



▲ 말라카냥궁 대통령 박물관에 있는 이멜다의 초상화 





[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3천 켤레의 구두로 기억되는 퍼스트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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