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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지 않은 에랍(Erap),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

by 필인러브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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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라다는 에랍(Erap)이란 애칭으로 불리웠다. 타갈로그어 pare(친구를 의미)의 철자를 거꾸로 한 것이다. 

 


1937년 4월 19일, 마닐라 톤도(Tondo)에서 호세 마르셀로 에헤르시토(Jose Marcelo Ejercito)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톤도라고 하면 빈민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는 집은 꽤 부유했다. 모두가 그를 톤도 출신으로 기억했지만, 그는 톤도를 떠나 산후안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20살 때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1957년부터 1989년까지 30여 년에 걸쳐 대략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주로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역할을 맡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미지로 무척 인기를 끌었다. 생의 대부분을 본명보다 영화배우 시절 만들었던 예명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이 사람은 바로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조셉 에스트라다(Joseph "Erap" Estrada)이다. 


*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野史)에 근거한 부분도 많습니다.

 

에스트라다가 출연했던 영화 포스터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 

조셉 에스트라다(조지프 에스트라다)는 대학중퇴의 학력이지만 산후안시티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영화배우가 어떻게 시장까지 자리에 오를까 싶지만, 필리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정치역량보다 개인적인 인기나 출신 지역 등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에스트라다는 1969년부터 1986년까지 16년간 산후안 시티의 시장 자리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필리핀에서는 최초로 컴퓨터를 통해 재산세를 납부토록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87년에 상원의원으로 당선됐고, 1992년 대선 때 피델 라모스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9대 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대선이 치러졌을 때, 높은 지명도와 인기를 바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에랍(에스트라다의 애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에 출마했다. 이 대선에서 에스트라다는 영화에서의 이미지를 이용해 서민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결국 필리핀 13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39.86%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그는 "마닐라 빈민가에서 태어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과 달랐다. 영화 속 정의로운 이미지를 잔뜩 어필하며 필리핀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조셉 에스트라다는 결코 빈민의 대변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에스트라다가 내세웠던 서민을 위한 공약들은 그저 공약에서 끝난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의 집권 후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대통령의 자질이 의심되는 행동들도 문제였다. 측근들에게 베푼 특혜에 대한 소문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의 행동은 끊임없이 입방아에 올랐는데 하룻밤에 100만 달러까지 잃을 수 있는 마작을 했다거나 혼외자가 8명이나 된다는 등의 이야기에서부터 여배우와의 염문설까지 실로 다양한 소문에 휩싸였다. 배우 시절의 지저분한 사생활까지 드러나면서 그의 인기는 점점 추락하게 되었다.


2차 피플 파워 혁명(제2차 EDSA 혁명)

그러다가 2000년 10월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에스트라다의 오랜 친구였던 루이스 차빗 싱손 일로코스 주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도박업자들에게 받은 뇌물과 담뱃세 리베이트 등을 비밀 은행 계좌를 통해 에스트라다 대통령에게 전달했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불법도박 이익금 배당에서 제외된 데다가 암살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라서 이 일을 폭로하게 되었다는 일로코스 주지사의 발언은 큰 파문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에랍을 지지했던 이들은 800만 달러나 되는 불법도박 자금과 260만 달러의 담뱃세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에 분노했다. 그리고 필리핀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서의 탄핵 절차가 시작되었다. 뇌물 수수와 부정부패, 국민기만, 헌법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탄핵 재판은 필리핀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그의 뇌물수수 혐의는 점점 사실로 밝혀졌고, 에스트라다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이 주도한 '2차 피플 파워(People Power)' 시민운동의 불은 거세게 번져갔다. 사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자 조셉 에스트라다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월 20일, 에스트라다는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퇴진압력의 강도가 높아지자 탄핵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졌던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물러난 뒤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부통령이었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Arroyo)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40억 페소를 횡령하고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에스트라다는 약 6년 동안 자택에 연금되었다. 2004년 부패감시 국제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세계부패보고서'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축재액은 7800만~8000만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1000억 원 정도에 해당)로 평가됐다. 그는 936일(1998년 6월 30일–2001년 1월 20일)동안 대통령 자리에 있었으니, 매일 1억 원의 국가재산을 빼돌린 셈이다. 

 

2007년 필리핀 산디간바얀 반부패 특별법원에서는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종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는 특별 사면을 받았다. 70세라는 나이와 긴 가택 연금 기간을 고려하여 사면·석방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석방에는 향후 정치 활동을 안 하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일을 놓고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에스트라다의 지지자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면에 대한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 여론을 보면 다소 기묘하게 흘러갔음을 볼 수 있다. 뇌물수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 뒤에도 필리핀 국민들은 에스트라다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2007년 당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필리핀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리더라도 아로요 대통령이 관용을 베풀어 에스트라다를 사면해야 한다고 응답했었을 정도이다.

 

 

Ang Tanging Pamilya - A Marry Go Round

다시 영화배우로 

흥미로운 것은 재임 기간에 정치헌금과 뇌물로 80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부정 축재했다는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출소 후 행적이다. 서민층의 지지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라 서민층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뇌물로 받아 챙겨서 비리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출소 후  ABS-CBN 방송에 출연해 이 모든 것이 반대파의 음모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9년 그는 72세의 나이로 20년 만에 'Ang Tanging Pamilya: A Marry Go Round'라는 제목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다. 필리핀계 미국인 남자친구와 결혼하려는 딸을 가진 버스 운전기사 역할이었다. 영화 촬영이 시작된 날 인터뷰에서 그는 왕년의 영화스타의 얼굴로 "내가 있었던 곳에 돌아와 행복하다"라는 논지의 인터뷰를 했다. 영화출연이야 그렇다고 해도 이후의 그의 행동은 대단히 독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세기 한 나라의 정치는 그 자체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시기 필리핀 국민들의 행동을 보면 정치의식 수준이 매우 낮았다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2010년 대선 

2010년, 에스트라다는 다시는 정치 활동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대선에 출마했다. 부정부패로 종신형까지 선고받았던 자를 왜 다시 자신들의 대표로 뽑아주는 것인지 의아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 에스트라다는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 III)에게 패했지만, 그래도 26.25%라는 지지율을 얻었다. 이런 높은 지지율을 놓고 빈곤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선거전략이 효과적이었다거나 높은 인지도가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실상 국민이 우매했다고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이후 그는 2013년 지방선거에 나갔고, 수도 마닐라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당시 에스트라다는 52.72%나 되는 표를 얻어 시장 자리에 올랐다. 상대 후보였던 알프레도 림(Alfredo S. Lim)이 그의 시장직 박탈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면되지 않았냐는 쪽과 아로요 대통령의 사면으로 에스트라다의 정치적 권리가 모두 회복되었다는 쪽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그리고 이 일에서 정의는 승리하지 못했다. 결과는 에스트라다의 승리였다.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니 그를 시장으로 두기를 원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무려 2019년까지 마닐라 시장의 자리에 있었다.

 

조셉 에스트라다는 한국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데, 10여 년 전에 가수 윤복희 씨가 에스트라다 대통령과 데이트한 일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2014년 마닐라 시장으로 재임 시에는 한-필리핀 경제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 방한하여 태양광 LED 가로등 설치 사업 등을 논의한 바 있기도 하다. 물론 마닐라의 가로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 코로나19 걸려 입원

오늘자 신문 기사에 따르면 조셉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에스트라다의 아들인 호세 징고이 에스트라다(Jinggoy Ejercito Estrada)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부친이 일요일 밤에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는데 지금은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한다. 부정부패를 일삼았다는 것만 봐도 아버지와 상당히 닮은 이 아들은 아버지의 빠른 회복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고 적었다. (2014년에 호세 징고이 전 상원 의원은 정부가 지역개발 지원을 명목으로 의원들에게 배정하는 개발보조금을 유용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 Inauguration of President Estrada
출처 : GMA News 
에스트라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올해 83세이다. (사진 출처 : FAMAS Awards)

 

※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Manila Standard - 2019 May 15 - Wednesday
issuu.com/thestandardph/docs/mspdf20190515_45de42ad8dd36a
· <인물> 필리핀 새 대통령 에스트라다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365999
· GMA News 
www.facebook.com/gmanews/photos/a.126333131976/1015141134533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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