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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뒷이야기]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이 필리핀 대통령 관저가 되기까지

by 필인러브 201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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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강처럼 마닐라를 관통하는 파식 강(Pasig River)을 지나다 보면 백색의 석조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필리핀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인 말라카냥궁(Malacañang Palace)이다. 어딘지 모르겠다면, 지갑을 열어서 가지고 있는 20페소 지폐를 꺼내 보자.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20페소 지폐 뒷면에 그려진 건물이 바로 말라카냥궁이다. 


■ 말라카냥궁의 역사


말라카냥궁의 역사는 무려 17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50년, 마닐라에 살던 스페인의 귀족 돈 루이스 로차(Don Lu s Rocha)는 파식강에 무려 16 헥타르(약 4만 8천평)이나 되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유행에 따라 강변에 여름 별장으로 사용할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게 바로 말라카냥궁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750년에 빌라가 지었을 때만 해도 그저 돈 많은 스페인 귀족의 시골 별장 정도에 불과했다. 비교적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었었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큰 규모를 가지호화로운 시설을 해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1802년 11월 16일에 이르러 돈 루이스 로차는 이 집을 스페인 군대의 호세 미구엘 포르멘토 (José Miguel Formento) 대령에게 팔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매매 가격이 천 페소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1825년 1월에 포르멘토 대령이 죽고 말았다. 포르멘토 대령의 유언 집행인은 이 건물을 매물로 내놓았고, 스페인 정부에서 이 집을 필리핀 총독을 위한 여름 휴양소 용도로 사들이게 된다. 그리고 말라카냥궁은 1825년부터 매해 여름이면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의 거주지가 되었다. 1847년 8월 27일에 이르러 스페인 총독은 이 집을 스페인에서 온 고위직 관료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원래 스페인에서 온 관료들은 인트라무로스(성안이라는 의미)에 있는 정부 관저에서 생활했었지만, 지배층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여름의 더위를 피해갈 재간은 없었던 모양이다. 여름이면 뜨거운 열기와 모기떼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되곤 했으니, 스페인 정부에서 관료들을 강가에 있는 말라카냥궁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부 주요 관료들이 생활하다 보니 말라카냥궁은 자연적으로 고위 관료들의 사교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63년 6월 3일, 인트라무로스 지역에 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지진으로 인트라무로스 안에 있던 정부 건물의 상당수가 붕괴하자 정치인들의 집무실이 하나둘 말라카냥궁 쪽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높으신 양반들이 대거 이사했으니 건물의 품격을 높이는 공사가 진행된 것은 당연지사. 당시 큰 비용을 들여 확장 및 개조공사가 진행되는데, 안뜰 및 옥상 시설 등을 만들고, 슬라이딩 도어 형태의 카피즈 창문(Capiz window)를 다는 등 스페인풍의 장식으로 건물을 꾸몄다고 한다.  





그리고 1898년이 왔다. 1989년 12월 10일, 파리조약을 통해 미국은 필리핀 통치권을 갖게 된다. 길고 길었던 스페인 통치 시기(1571년~1898년)가 끝나고, 미군이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필리핀을 점령한 미국에서는 말라카냥궁을 미국령 필리핀 총독의 관저로 사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말라카냥궁의 규모를 확장하고, 대대적으로 건물 개조 및 수리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수 시설 및 전기시설을 설치하고, 장마철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목재 부분을 콘크리트로 바꾸는 작업을 했는데, 미군 국기를 달기 위한 게양대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미군이 지배하는 동안 말라카냥궁의 모습은 현재와 비슷한 모양으로 외관을 갖추게 된다. 1935년, 마누엘 L. 케손 대통령이 말라카냥궁에 자리를 잡게 된다. 필리핀 자치령 연방 정부이기는 했지만, 필리핀 대통령의 자격으로 처음 말라카냥궁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퀘손 대통령은 해마다 우기면 찾아오는 파식 강의 범람과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는 작업을 하는 등 시설개선에 나섰지만, 1939년에 2차 세계 대전(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이 터지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 말라카냥궁은 일본군의 지배하에 감옥으로 사용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남서쪽 지역 일부만이 손상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전쟁 중에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정부 건물이 되었다. 1946년 7월 4일, 지긋지긋하리만큼 길고 길었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필리핀은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하고 대통령 관저로 말라카냥 궁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말라카냥궁에서 살았던 대통령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마르코스 대통령 이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요 대통령만이 말라카냥궁에 살았을 뿐, 필리핀 대통령 대부분은 파식 강 건너에 있는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  


말라카냥궁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재임 기간 : 1965년 12월 30일~1986년 2월 25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는 필리핀 경제를 거덜 낸 사치의 여왕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멜다의 사치스러운 취향에 따라 말라카냥궁은 1978년에서 1979년 사이 인테리어 공사를 전체적으로 새로 했다. 바닥에는 고급 나무로 된 마룻바닥, 이탈리아산 대리석이 깔렸으며, 천장에는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달렸다. 접견실의 마르코스를 위한 좌석은 방문자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다른 좌석보다 높게 설치되었다. 이멜다를 위한 침실과 욕실도 호화롭게 만들어졌는데, 황금으로 된 세면대와 함께 화려한 욕조 위에는 거울로 된 천장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사를 마친 말라카냥궁 안에는 440㎡(약 133평)의 커다란 방이 마련되었고,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최고급 의류며 명품 구두, 가방 등 온갖 사치품이 방 안에 쌓이게 되었다. 3,000켤레의 구두와 1,200벌의 드레스, 1,500개의 핸드백과 함께 비밀리에 말라캬냥 궁 안 들어온 것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미술품들이었는데, 그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6년에 필리핀에 피플 파워 혁명(EDSA People Power Revolution)이 일어났다. 그리고 1986년 2월 25일,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박물관 건물 2층 발코니에서 그 모습을 보인 것을 끝으로 말라카냥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클락공항을 통해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가난에 찌든 수많은 시민이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말라카냥궁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았던 것은  황금으로 도금한 이멜다의 동상과 상상을 초월할 만큼 사치스러운 광경이었다.





■ 말라카냥(Malacanang)의 의미


말라카냥(Malacanang)이란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분분하다. "귀인이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뜻을 가진 May Lakan Diyan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1877년 스페인의 역사학자 펠리페 데 고반테스(Felipe de Govantes)가 쓴 책을 보면 말라카냥이라는 단어가 어부의 장소(place of the fisherman)를 의미한다는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 말라카냥궁에서도 말라카냥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750년 이래로 지금까지 높으신 분이 사는 곳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단어의 철자가 좀 바뀐 적이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당시 출판된 스페인어책은 말라카냥(Malacanang)이라고 기재했지만, 미군 식민지 시절 문서를 보면 영어식으로 Malacanan이라고 기재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953년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취임한 후 말라카냥(Malacanang)으로 스펠링을 다시 바꾸었다. 참고로 말라카냥 팰리스(Malacanang Palace)는 대통령의 공식 거주지로써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공식 문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팰리스(Palace) 없이 말라카냥(Malacanang)이라고만 적으면 대통령의 사무실을 의미하는데, 말라카냥(Malacanang)라고 기재한 문서는 대통령이 아닌 부하 직원이 위임하고 서명한 문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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