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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메트로 마닐라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만성절 마닐라 사우스 묘지 풍경

by 필인러브 2019.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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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여서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종종 생긴다. 특히 장례문화에 대해서는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잔뜩이다. 고인 또는 유가족의 취향에 따라 무덤의 색을 어여쁘게 칠하고, 비교적 덤덤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꽤 마음에 들지만 화장하고 나온 뼈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간다거나, 무덤 위에 올라 장난을 치고 놀거나 잠을 자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묘지 주변까지 잔뜩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더욱더 이상하게 여겨진다. 아마도 내가 무덤 주변은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해야 한다고 배운 한국인이라 그런 모양이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정도의 고민밖에 없는 만성절 오후였다. 요즘 나는 필리핀 역사에 관한 공부를 잠깐 접고, 주제를 경제 쪽으로 바꿔 공부하고 있는데 역사와 다르게 경제 쪽은 온종일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필리핀 사람을 닮아가는 것인지, 간단한 산수 계산도 어려워하는 요즘이라 밀리언이니 빌리언의 하는 숫자만 나오면 머리가 뒤숭숭해지는데 연달아 그런 숫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혹 계산이 틀릴까 봐 변환기를 써서 밀리언을 숫자로 바꾼 뒤 다시 원화로 계산해보는 일은 지루하기도 했다. 무언가 즐거운 일이 있었으면 싶어도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기에 마닐라 사우스 묘지(Manila South Cemetery)까지 산책하러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묘지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메랄코 앞 사거리에서부터 아얄라몰입구까지, 묘지 주변의 도로는 죄다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막았지만, 사람이 파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묘지 입구의 보안검색대에는 사람이 어찌나 많이 몰려있는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다행히 보안 검색대의 직원은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방을 하나하나 보기가 힘든지 대충 보고 통과를 시켜준다. 흥미로운 것은 반입금지 물품 안내이다. 비행기 탑승 때처럼 위험물이나 라이터 등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음악 스피커를 들고 오지 말라고 안내문에 적어둔 것은 좀 독특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피커를 가지고 와서 볼륨을 높이면 저렇게 안내문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11월 1일 만성절(All Saint's Day)이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성묘 모습은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일단 묘지 방문 시간부터 자유롭다. 만성절에는 묘지가 24시간 개방되니, 언제 가든 자기 마음이다. 옷차림도 자유로워서 개중에는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술집에서 일하는지 출근용 복장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온 레이디 보이(게이)도 보인다. 전날 입었던 핼러윈 의상을 그대로 입고 온 아이들도 있고, 피 묻은 도끼 모양의 머리띠를 한 아주머니도 있다.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알록달록한 풍선까지 등장한다. 무엇보다 묘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자체가 매우 자유롭다. 소풍이라도 온 듯 짐을 한가득 챙겨오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유행하는 팝송이 틀어놓고 즐겁게 스파게티를 먹어 치우는 가족도 보인다. 가장 다른 것은 슬퍼하며 우는 사람은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일은 인간이 해내야 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탓에 아무리 묘지라고 해도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나이지만, 뭐 이렇게까지 깔깔 웃으며 즐거워할까 싶을 정도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그중에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네 묘 쪽으로 오라고 불러서 가족들 사진도 좀 찍고 가라고 청하는 사람도 있다.


매우 수다스러운 아주머니였다. 내 나이를 묻고, 사는 곳을 묻고, 이것저것 묻더니 자기 가족에게 일자리를 소개할 수 없느냐고 물어온다. 묘지에서 일자리 알선을 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더니, 옆의 묘를 가리키며 아래는 남편이고, 위는 아들이라고 알려준다. 옆에 앉은 사람이 며느리인데, 이 며느리가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생계 걱정도 귀찮은데 처음 보는 사람의 며느리의 일자리 걱정까지 하기 싫은 나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묘를 만드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묻기로 했다. 아주머니 설명에 따르면 사우스 묘지에는 임대가 전혀 없어서 몇 년 전에 5백 만원 정도를 주고 땅을 샀는데, 터가 어디인지 그리고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우스 묘지 중심에 있는 마치 집처럼 생긴 가족묘를 사려면 돈이 몇억 가지고도 모자란다는 이야기이다.  이 아주머니네 묘지는 관을 2층으로 쌓아 올렸으니 한 사람에 250만 원이라고 계산해도 필리핀에서 상당히 큰돈이 아닐 수 없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에 더 큰돈이 들고 있는 셈이다. 나는 죽어서까지 땅을 차지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라서 250만 원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그 돈까지 알뜰하게 쓰면서 좀 더 유쾌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만성절 마닐라 사우스 묘지 풍경





▲ 메랄코 사거리 



▲ 묘지 입구. 만성절에 묘지에 가면 인파에 시달려야 한다. 



▲ 스피커와 같은 사운드 시스템은 권총과 동급이다. 묘지에 반입 금지이다.  




▲ 사우스 묘지는 시내 한가운데 있지만, 상당히 넓다. 메인 거리 쪽으로 부자들을 위한 무덤이 있는데 어지간한 집보다도 큰 가족묘도 많다. 바깥쪽이 가난한 사람들 자리이다.








▲ 사진 속의 건물은 집이 아니다. 가족묘이다. 







▲ 사우스 묘지 한가운데는 제6대 대통령이었던 엘피디오 키리노(Elpidio Quirino)의 무덤이 있다. 






▲ 보통 때에는 무척 한가해서 바람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 곳이 마닐라 묘지이지만. 만성절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송국 촬영도 많이 온다. 




▲ 누구는 죽어서도 이런 곳에 머무는데, 이런 집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필리핀에 태반이다. 



▲ 천막이며 의자며 모두 어떻게 다 들고 왔는지 정말 대단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밥솥도 빠지지 않는다. 




▲ 꽃을 봐서 누군가 유명인의 묘지같은데 누군지 잘 모르겠다. 



▲ 죽음과 묘지, 쓰레기와 핸드폰 게임. 이 모든 것의 어우러짐. 






▲ 내가 딱 좋아하는 색감을 가진 무덤을 발견했다. 





▲ 무덤이 뭔가 어수선해 보인다. 








▲ 예쁘게 장식된 무덤도 많다. 





▲ 사진 속처럼 된 것을 아파트형 무덤이라고 부른다. 한 곳의 무덤을 만든 뒤 시차를 두고 다른 사람의 무덤을 올려 공간을 절약한다. 




▲ 만성절에는 초가 빠지지 않는다. 동네에서도 현관 문밖으로 초를 켜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 어린이 묘지는 구역이 따로 되어 있다. 




▲ 묘지 뒤로 보이는 마카티 도시 풍경이 어색하다. 필리핀에서도 가장 좋다는 동네가 바로 뒤에 보이는 동네이다.  





▲ 아파트형 무덤 



▲ 묘지 패션의 선두주자 아주머니.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니, 기뻐하셨다.  



▲ 수다쟁이 아주머니 






▲ 고양이! 



▲ 묘지에서도 핸드폰 오락은 필수이다. 데이터를 쓰려면 로르가 필요하니, 임시로 로드 충전하는 곳이 생겼다. 





[필리핀 마닐라 자유여행] 만성절 마닐라 사우스 묘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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