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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55kg의 접시와 작달비

by 필인러브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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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접시는 얼마예요?"

"잠깐 저울에 재보고 알려줄게."


2NE1이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불렀을 적의 이야기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로일로 다운타운에 갔다가 아주 어여쁜 그림이 그려진 접시를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릇은 내 관심사가 아니지만, 발걸음을 멈춘 것은 친구네 집에서의 저녁 식사가 생각나서였다. 당시 매우 친하게 지내던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함께 먹었는데, 이 친구는 정말 극도로 가난한 친구였다. 어찌나 가난한지 나에게 접시를 주고 나니 자신은 그릇이 없어서 일회용 반찬 뚜껑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밥을 먹어야 했다. 다음에 또 놀러 갈 때를 대비하여 친구에게 산뜻한 접시를 선물하고자 접시 가격을 물었는데, 가게 주인이 개당 개수가 아닌 kg당 개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돼지고기도 아니고 kg 단위로 그릇을 산다는 것은 당시 내게 적잖은 문화 충격이었다. 그때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지금은 무게를 재어서 파는 그릇을 봐도 신기해하지 않는다. 대신 접시를 240개 사면 대체 몇 kg이냐 되느냐고 물어서 산수 실력이 나만큼이나 엉망인 마트 직원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드디어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첫 원고료를 받았다. 필리핀에서의 한류 문화를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타루칸 마을 꼬마 녀석들이 입을 쩍 벌릴 만큼 간식을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되었다. 돈의 액수를 떠나, 내게는 이 돈이 퍽 대견했다. 타루칸 마을에 가지고 갈 빵을 살 때 망설이지 않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위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글을 쓰고 받은 돈인 것이다. 서태지가 한참 인기를 끌 때도 건즈 앤 로지스 노래나 듣고 있던 인간이 나이다. 나이가 들어도 취향에는 변함이 없어서 최신 가요나 한국 드라마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 이름까지 알게 된다. 연예인이라고는 송해 선생님과 강동원 정도만 간신히 구별하는 주제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규정에 맞추어 한류 관련 글을 쓰려면 골치가 아프지만, 돈 받는 일은 역시나 즐거운 법이라서 아이돌 그룹은 왜 이렇게나 멤버가 많냐고 불평하던 말이 쑥 들어갔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지갑을 페소로 채우고 타루칸 마을에 가지고 갈 장보기에 나섰다. 그런데 불라칸에 있는 퓨어골드 쇼핑몰의 마트 직원은 접시를 한꺼번에 240개나 사고 싶다는 손님을 처음 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릇을 정말 그렇게나 많이 살 것이냐고 재차 묻고 나서야 창고에 가서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직원이 창고에 간 사이 나는 접시 하나에 200g이 조금 넘는다는 것과 모두 다 사면 55kg 정도가 나갈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피나투보 산자락 아래 있는 타루칸 마을까지 들고 가기에는 좀 무겁지만, 상자를 여러 개 나눠 포장하면 들고 가지 못할 무게는 아니다. 나는 쌀을 사려고 했던 계획을 단숨에 접고, 그릇으로 쇼핑 목록을 바꾸었다. 아이들을 위한 구슬이며 손거울까지 잔뜩 가지고 있으니,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쌀을 샀으면 큰일 났겠다고 생각할 일이 생겼다. 불라칸에서 수빅 방향으로 가는 동안 비가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곧 그치지 않을까 낙관적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흡사 장마철 장대비처럼 떨어진다. 쌀을 사서 작달비에 젖게 했으면 얼마나 속상했을꼬. 타루칸 마을 사람들은 종이 상자까지도 가지고 싶어 하는 터라 상자가 젖는 것은 좀 아깝지만, 그래도 내용물은 무사할 터이니 비가 내려도 마음이 여유로웠다.




필리핀 불라칸. 퓨어골드 쇼핑몰 



▲ 작년 이맘때만 해도 쌀 가격이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최근 베트남 쌀이 수입되면서 쌀 가격이 좀 내렸다. 25kg에 950페소이다. 



 바고옹(bagoong)을 좀 사서 산에 가지고 가고 싶지만 냄새 때문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고옹은 새우나 작은 생선으로 만든 젓갈이다. )



 1+1은 필리핀에서도 사랑이다. 커피를 12개 사면 6개 더 준다고 하니, 만세이다. 



  퓨어골드에 있는 행사용 커피를 모두 사버렸다.  



 그릇 판매대. 1kg에 109페소이면 제철 망고 가격과 비슷하다. (요즘은 제철이 아니라서 망고 가격이 두 배는 올랐다.) 




  꼼꼼하게 숫자를 세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직원이 이 짓을 네 번이나 하는 것을 보면 지친다. 




 개당 판매하는 접시는 56페소나 한다. 




 하도 계산이 느려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릇 판매대 직원이 나만큼이나 더하기 빼기가 잘되지 않아서 세고 세고 또 세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놓고도 계산을 틀려서, 계산대 여직원에게 혼나고 있었다. 



 매우 신기하게도 웨이즈가 뉴클락시티(New Clark City) 고속도로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 구글맵을 확인해보니 길이 있다고  아직 표기도 되지도 않은 상태이다. 비는 세차게 쏟아지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서 30분 넘게 차 한 대 보지 못하니 매우 불안하고 뭐에 홀린 기분마저 들었지만, 그럭저럭 뉴클락시티의 동남 아시아 경기 대회 경기장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다음 날 게스트하우스의 알빈 아저씨에게 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이냐고 여쭤보니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면서 길이 아직 개통하지 않았더라고 해도 결국 잘 도착했으니 상관없지 않냐고 멋진 대답을 해주었다. 



▲ 그릇만 가지고 가서는 타루칸 마을에서의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꼬마 녀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려면 입에 빵을 좀 넣어줘야 한다. 



▲ 필리핀 시골 빵집의 주방은 이렇게 생겼다. 





▲ 오늘 구운 이 맛있는 빵은 하나에 5페소이다. 한 봉지 가득 사도 큰돈이 들지 않으니 고마운 일이다.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55kg의 접시와 작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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