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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아이따족 꼬마 아이들의 구슬치기

by 필인러브 2019.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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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나에게만 중요한 날이 있다. 바로 나의 멋진 생일이다. 하긴, 필리핀 사람만큼은 중요하게 여기지는 못한다. 세상에 필리핀 사람만큼 자기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으니 도무지 따라가기 힘들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대출까지 받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다. 필리핀에 사는 인도 사람들이 주로 하는 활동 중 하나가 '붐바이 파이브 씩스 론(bombay 5-6 loan)'라고 부르는 일수놀이인데, 1,000페소를 빌리면 1,200페소를 갚아야 하는 식의 고리대금업이다. 이자가 상당히 비싸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붐바이의 돈을 쓰는 것은 대출받기가 은행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인도사람 돈은 갚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알려져 있고 빌린 돈 갚기가 쉬운 일은 아닐 터인데, 하루에 30페소씩 40일 동안 이자를 갚아도 된다며 돈 빌리는 일을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암튼, 과부의 대 돈 오 푼 빚을 내서라도 생일 축하를 하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라서 내가 아무리 내 생일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그 열정적인 태도를 따라가기란 힘들다. 하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내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 내 멋진 생일을 거하게 축하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다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내가 택한 방법은 타루칸 마을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전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이처럼 호화로운 생일 파티가 없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해주어야만 구슬을 나눠주겠다고 이야기하면 타루칸 꼬마 녀석들이 신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어쩐지 생일 축하 노래의 박자가 원래보다 좀 빨라진 것 같지만, 그런 건 기분 탓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멋진 구슬은 그야말로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구슬 봉지를 보자마자 다들 졸렌(타갈로그어로 '구슬'이라는 뜻)을 외치면서 술렁술렁 목소리가 커진다. 개구쟁이 사내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서 손바닥에 구슬을 받아들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어떤 공연을 보는 것보다 즐겁다. 구슬이며 거울을 잔뜩 들고 차이나타운의 복잡한 길 위에서 헉헉댈 때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런 불평은 아이들 얼굴을 보자마자 쑥 들어갔다. 구슬 같은 눈망울의 아이들이 구슬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보통 구슬보다 크기가 큰 구슬을 구했다고 자랑하는 내게 D는 구슬치기 게임을 할 때는 큰 구슬이 불리하다고 핀잔을 놓았지만, 그 큰 구슬을 보고 아이들 눈동자가 어찌나 커지는지 뭔가 대견한 일을 해낸 것처럼 느껴진다. 구슬 파는 곳을 찾지 못해서 시장을 꽤 오래 돌아다닌 터라 아이들이 신나게 구슬치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좀 뿌듯하기까지 했다. 세상에 돈 만 원 정도 쓰고 이렇게 흡족한 기분이 들기도 힘들 터였다.  


카사바 수확이 끝나고 우기가 오면 하루 한 끼 먹는 일도 고민이라는 사람들이 아이따족 사람들이다. 그래서 타루칸 마을에 가면서 먹을 것이나 사 가야지 싶기도 하지만, 요즘 나는 거울이며 머리끈과 같은 것들을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따족 십대 소녀들도 여느 소녀들과 똑같다. 먹는 것만큼 미모를 가꾸는 일도 중요한 일인 것이다. 메이드인 차이나 티가 역력한 알록달록한 머리끈이며 싸구려 플라스틱 거울은 촌스럽기도 하지만, 타루칸 마을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촌스러운 분홍빛이 어쩐지 산뜻하고 경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산더미 같은 곱슬머리에 똑딱 핀 두 개를 꼽아보았자 과히 티가 나지도 않건만 모두 하나씩 꼽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머리 고무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내게 오더니, 자신들도 머리를 묶고 싶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마닐라 차이나타운에 가면 80페소만 주어도 머리끈을 한 봉지 가득 살 수 있는데 싶어서 재빨리 다음 달에 올 때 사다 주겠노라고 대답을 하다가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머니는 아이따족 말로, 나는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서로 찰떡같이 이야기를 알아들은 것이다.




필리핀 딸락 카파스 산타 줄리아나 마을. 이곳에서 사륜구동차를 타고 40여 분 달리면 타루칸 마을에 갈 수 있다. 그리고 타루칸 마을에서 다시 한 시간 정도 사륜구동차를 타고 달려야 피나투보 화산이 나온다. 



▲ 빵을 하나 아침으로 먹고, 빵 배달에 나섰다. 




▲ 굿모닝! 



▲ 이 꼬마, 뱃살이 엄청나게 귀엽다! 




▲ 잠깐 거울 때문에 난리가 났다. 서로 가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기에 한 가구당 하나씩 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겨우 다들 진정했다. 



▲ 응??  





▲ 요 녀석에게 잠깐 구슬치기 비법을 배웠지만, 내가 구슬치기에도 소질이 없음에 대해 곧 깨닫게 되었다. 



▲ 빵 먹는 꼬마와 빵 먹는 꼬마가 부러운 댕댕이 




▲ 머리를 빗어 보아요 




▲ 사진 인화 서비스는 너무 인기가 좋아서, 좀 곤란할 정도이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꼬마들 노는 것 보는 일이 더 좋은데 이제 사진을 찍어달라고 줄까지 서 있다.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아이따족 꼬마 아이들의 구슬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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