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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기를 위한 리본 머리끈

by 필인러브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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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한 추첨 선물상자 안에는 고작 치약 두 개와 물병 두 개, 그리고 초코파이 몇 개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물건을 앞에 놓고 마을 아낙네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이었다면 그걸 누가 탐을 내겠는가 싶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타루칸 마을에서는 이 물건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가 퍽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집단이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아주머니 세 분이 집중적으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그 언쟁이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부끄러워서 내 옆에서 말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으니 제법 친해지게 된 모양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카무스타(잘 지냈어요)?"라고 물어오면 간신히 "마부티(잘 지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정도로 허술한 언어 실력을 갖춘 내가 아주머니들에게 이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 다툼과 분쟁의 원인은 명확했다. 매우 의외이지만, 타루탄 마을 사람들은 전출입이 꽤 잦았고, 때로는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명단을 관리하는 바랑가이 캡틴 아저씨는 그럴 때마다 명단을 새로 만들었다. 좀 괜찮은 물건이 생길 때 모두에게 나눠줄 수 없으니 라플(추첨) 형태로 나눠주기로 한 것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명단이 변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던 것은 문제였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의 명단에 적힌 번호대로 선물을 주었는데, 명단 자체가 만날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2월인가부터는 내가 명단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다니고 있지만, 그 명단을 만들기 전 몇 달은 이장님의 명단을 바탕으로 당첨자를 뽑았었으니 엉망이 될 수밖에.  선물을 주지 않았음에도 선물을 주었다고 표시가 되어 있기도 하고, 선물을 받았음에도 아직 주지 않았다고 표시가 되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긴 이야기를 설명할 재주가 내게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신통한 재주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재주가 생길 확률은 내가 다시 20대로 돌아갈 확률만큼이나 낮았다.  그러니 나는 마을 아낙네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지 않고 함께 간 라울에게 오늘 가져온 라플 선물은 특별한 것도 없는데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했다. 다행히 언쟁은 이내 흐지부지 사라졌다. 나는 오늘 가져온 물건들은 추첨해서 나눠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앞에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선물상자를 건넸다. 목소리를 높이던 아주머니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인데 어부지리 격으로 물건의 임자가 된 할머니만이 세상 행복한 얼굴로 흐뭇하게 웃으셨다. 


그나저나 디비소리아 재래시장에서 사 온 나의 머리끈은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상자 하나 가득 머리끈이 담긴 것을 보자 마을 소녀들 눈동자가 어찌나 커지는지 시장까지 머리끈을 사러 간 보람마저 느껴진다. 다 함께 머리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많은 양의 머리끈을 한꺼번에 보는 일은 처음이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타루칸의 아기 엄마들은 리본이 달린 머리끈을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리본이 달린 작은 머리끈은 아기와 어린이에게만 준다고 했더니, 갑자기 내 주변으로 아기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태반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어린 아기이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기의 얼굴을 내게 보여주고는 이제 리본 머리끈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으냐는 모습으로 손바닥을 내민다. 그런데 아이 핑계를 대고 머리끈을 가지고 갔으면 아이 머리를 묶어주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등만 살짝 돌리고는 바로 자기 머리를 묶는다. 숱 많은 곱슬머리에 고무줄 하나 더해진다고 갑자기 미모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건만 매우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웃는 것은 보기만 해도 재밌다. 천 페소어치 빵을 더 사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머리끈같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을 좀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  카라바오 소와 꼬마 녀석 



▲ 대단히 날씨가 맑아서, 공기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었다.  





▲ 실제보면 정말 예쁘다.  



▲ 타루칸 마을 앞에서 로사네 엄마 아빠를 만났다. 시내로 나가려던 모양인데, 로사 아버지가 시내 나가는 것을 미루고 나와 함께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나섰다. 



▲ 로사 엄마 



▲ 귀요미 꼬마 녀석들!! 




▲ 이 아저씨가 왜 자꾸 자기 머리에도 핀을 꽂아달라고 청하나 했더니, 이렇게 얻어서는 딸 머리에 꽂아준다. 좋은 아빠이다. 




▲ 타루칸 마을에서조차 예쁜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 타랍 디아즈 아저씨  :) 
























학교 벽에 붙여진 사진을 보고, 왜 내가 가지고 가는 사진이 그렇게 인기가 좋은지 깨달았다. 




▲ 빨래가 뽀송뽀송 기분 좋게 마르고 있었다. 





▲ 이 알비노 카라바오 소가 이끄는 마차는 사람 마음을 은근히 신나게 한다.  



▲ 교회 뒷집에서 사리사리 스토어(Sari-sari store)를 만드는 모양이다. 손님이야 뻔하겠지만, 무언가 상업활동을 하려고 한다는 자체가 좋아 보인다. 





▲  산타 줄리아나 마을로 돌아가는 길. 로사 엄마가 시내로 나간다고 하여 함께 했다. 빈 차로 가면 4X4 기름값이 아까워서, 무임승차 승객은 언제나 환영이다.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기를 위한 리본 머리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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