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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루손섬

[필리핀 종교] 진짜 채찍과 진짜 못, 부활절 예수 십자가 처형 재현 행사

by 필인러브 2020.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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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종교가 무엇인가 확인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다. 신자가 무려 8,030만 명(79.5%)에 달한다. 통계 조사 당시 필리핀 인구는 약 1억 97만 명 정도였으니, 열에 여덟은 가톨릭을 믿는 셈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두 번째로 많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는데, 대략 9%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는 그 종파가 매우 복잡하다.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약 266만 명), 복음주의교회협의회(약 244만 명), 비로마카톨릭(114만 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79만 명), 아글리파이(75만 명). 성경침례교회(55만 명), 여호와의 증인(43만 명) 등을 다 더해야 인구의 9%가 겨우 넘는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라는 이미지가 무척 강한 편이지만, 의외로 많은 것이 이슬람교(606만 명)로 인구의 6% 정도를 차지한다. 최근 가장 많은 신자를 늘린 종교는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NC. Iglesia Ni Cristo)'로 인구의 2.6% 정도가 믿고 있다고 조사된다. 펠릭스 마날로(Felix Manalo)가 창시한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그리스도의 교회)는 다른 모든 교회는 구원이 없으며 자기들만이 성경에 예언된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인데, 1924년만 해도 INC의 교인 수가 3천 명가량에 불과했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세력 확장이다. 하지만 이글레시아는 교인 수를 비공개로 하고 있어서, 이 통계 조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필리핀에 생활하면서 종교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느끼게 되는 때가 몇 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부활절이다. 필리핀 사람들의 부활절 행사를 보게 되면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 가시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부활절기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했음을 기념하는 축일인데 부활절(Easter) 하루만이 휴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최후의 만찬이 있던 성목요일(Maundy Thursday)부터 예수 수난일인 성금요일(Good Friday), 부활 전날인 성토요일(Black Saturday)까지 모두 성주간(고난주간)으로 보낸다. 부활절 날짜는 음력을 고려하여 계산하기 때문에 매년 바뀌지만, 성목요일 또는 부활절 당일을 전후하여 휴가를 내고 길고 긴 연휴를 보내기도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되었지만, 부활절 기간은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시기가 되기도 한다. 필리핀 사람들의 한국 방문이 가장 많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의 부활절 행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리인액트먼트(reenactment)라고 하여 못과 망치 등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을 재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기마라스 섬을 비롯하여 필리핀 곳곳에서 열리는데, 마린두케(Marinduque) 섬에서는 모리오네스 페스티벌(Morinoes Festival)이란 이름의 축제를 열기도 한다. 루손섬에서는 마닐라 북쪽으로 불라칸(Bulacan) Paombong 지역에 있는 카피탕간 바랑가이(Barangay Kapitangan)와 팜팡가 산페르난도에 있는 쿠투드(Cutud)라는 곳이 유명하다. 특히 쿠투드라는 곳은 1960년대부터 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재현하는 의식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매년 부활절이면 이 의식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 정도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굳이 직접 재현하여 봐야만 하는 것일까 싶지만, 이 행사의 준비는 실로 철저하다.

일단 예수의 고난을 겪을 재현자(Reenacter)를 선발해야만 한다. 누가 이 고단한 일을 할까 싶지만, 열성신자는 있기 마련이다. 쿠투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따라 하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고 기꺼이 예수 역할을 연습한다. 재현자가 연습을 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십자가 처형을 재현하기 위한 대형 십자가와 가시 면류관, 채찍 등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 수난일인 성금요일(Good Friday)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인다. 예수처럼 5천 대가 넘는 채찍질을 당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대충 대나무 채찍을 휘두르는 척만 하다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소처럼 꾸며진 행사장까지 이동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에 매달고, 손과 발에 한 뼘 길이의 못을 박는 일이다. 파상풍을 막기 위해 소독된 못만 사용한다고 하지만 대단히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적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야 개인 자유라고 하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퍼포먼스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타인의 종교 생활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지만, 손에 못을 박는 광경을 좀 더 가까이 관람할 수 있도록 VIP 귀빈석을 유료로 판매하기도 한다니 하는 소리이다.

 


 

▲ 필리핀 딸락, 카파스(Tarlac, Capas)
▲ 이 사진은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부활절 관련 행사가 모두 금지되었다.
▲  PABASA CHAPEL
▲ 부활절 성금요일(Good Friday)에 시골 교회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면 이유는 하나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언가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 설마 진짜 피인가 싶어 자세히 보고 있으니, 옆의 아저씨가 진짜라고 알려주셨다.
▲ 무슨 식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덩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종교적인 감동보다는 얼굴이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 교회 안쪽에서 여자분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필리핀 종교] 진짜 채찍과 진짜 못, 부활절 예수 십자가 처형 재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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