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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루손섬

[필리핀 루손섬 여행] 누에바 에시하,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을 지키는 사나이

by 필인러브 201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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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아주 만족할 수도, 혹은 아주 불행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잠시만 만족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했다. 어쩌면 꽤 오래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소일거리를 준비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라디오보다 책이 나을 것 같았다. 

크기도 혹은 작지도 않은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평범한 모습으로 쭉 늘어서 있는 평범한 시골길이었다. 염소 한 무리와 카라바오 소 한 마리를 보았을 뿐, 마땅히 시선을 두고 기억할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판타방간 댐까지 가는 길은 거리가 꽤 되었지만, 가는 동안 크게 기억에 남을 일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그런데 댐의 시설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았다. 댐 위로 보이는 호수의 풍경이 꽤 근사하기도 하여서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도 많은 듯했다. 좀 의외였지만, 댐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나 외에도 많이 보였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온 것일까.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우르를 왔다가 잠깐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소란스러움은 아주 잠깐이었다. 풍경도 꽤 멋지고 바람도 시원했지만, 오래 머물면서 바라볼 정도로 감동을 주거나 색다른 부분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애초에 버스정류장과 같은 곳이었다. 잠깐 들리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할만한 일이라고는 없었으니 사람들은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떠나곤 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바람이 흥건했다, 그리고 아저씨 한 분이 그 흥건한 바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초소 앞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흠집이 수없이 나 있는 네모난 낡은 라디오였다. 매우 오래전에, 아마도 아저씨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즈음에 샀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얻었을 것이다. 아무튼 요새 나오는 신식 라디오의 기능이라고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 보이는 라디오였다. 그리고 이 오래된 라디오 속에서는 하염없이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이는 필리핀의 어느 한적한 산골에서 댐 위를 지키는 사나이가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음을 모를 것이었다.


누군가 아저씨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드(GUARD)라고 답하겠지만, 나로서는 대체 이 아저씨가 댐 위에서 무엇을 지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훔쳐 갈 것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댐 위였다. 혹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있는 것일까 하고 싶어서 유심히 보았지만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나서는 모습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힐끗 바라만 볼 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대체 무언가를 지키려고 이곳에 있는 것일까. 댐을 관리하는 회사에서는 댐 위에 초소를 그냥 비워둘 수 없다는 이유로 아저씨를 경비원으로 고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무례하게 아저씨에게 여기서 뭘 지키느냐고 묻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오래된 라디오와 친구 하여 하루를 보내는 일이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일이 틀림없었다. 도시의 가드 아저씨들처럼 매연을 마실 일도 없고, 손님에게 깍듯하게 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생활하기에 충분할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온종일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으니 혼자 있기 좋아한다면 최상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저씨에게 댐이 멋지다고 말을 걸었지만,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아저씨의 평화로움을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가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저씨 모습조차 사라진 댐 위에는 여전히 바람만이 흥건했다. 



[필리핀 루손섬]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

- 주소 : Pantabangan, Nueva Ecija 

- 위치 : 누에바 에시하(Nueva Ecija)



판타방간 호수(Pantabangan Lake)에 세워진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은 필리핀에 건설된 댐 중 가장 깨끗하고 쾌적하게 건설된 댐으로 꼽히는 곳이다. 1971년도에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공사가 완공되었지만, 댐 저수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이주 문제로 댐 시설을 가동하는 것에는 몇 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상수도 및 공업용수를 공급할 뿐 아니라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대는 관개 용도로도 사용된다. 홍수조절 및 수력 발전의 역할도 하는 다목적 댐이라 강도 8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발전소 시설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이지만, 댐 위의 지역은 일반인 방문도 가능한데 소박하지만 뷰 데크( Pantabangan Dam View Deck) 시설이 되어 있다.  



▲ 댐으로 가는 길 






▲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 입구 






▲ 여행객들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 댐 아래쪽에 있는 수력 발전소 시설 











▲ 대충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큰 볼거리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바람은 시원하고 눈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필리핀 루손섬 여행] 누에바 에시하, 판타방간 댐(Pantabangan Dam)을 지키는 사나이  

 - 2017년 1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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