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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생활/피나투보 타루칸마을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마음의 가난을 막으려면

by 필인러브 201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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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는 잡다한 글쓰기인데 사실 그게 직업이기도 하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글이 신통하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신통하지 않은 글에 대한 수요도 있기 마련이라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꽤 운이 좋은 편이지만, 하기 싫어하는 것을 꼽으라면 그 역시 글 쓰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건 언제 무엇에 대한 글을 쓰느냐의 문제이다. 내가 쓰는 글이란 것이 대부분 블로그용 짧은 글이나 간단한 잡지 기사 따위라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하지만, 문학상을 받을 정도의 멋진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언가 뚝딱 완성되지는 않는다. 특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온종일 끙끙대며 커피만 하염없이 마시는 일이 생겨난다. 마지막 문장에서 막혀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으면 신경질이 나서 편두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따호(Taho) 파는 아저씨만큼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에 대해 주절주절 써 내려가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좀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잘 알지도 못하는 케이팝 가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나선 것은 순전히 타루칸 마을의 꼬맹이들 때문이다. 환갑의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의 노래를 즐겨 듣는 나는 아이돌 가수 이름도 모르지만, 타루칸 아이들 입에 넣어줄 빵을 잔뜩 사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 엑소가 마닐라에서 콘서트를 했다는 소식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둔 것은 사는 일이 무척이나 지겹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전화를 거는 대신 집으로 찾아가는 나로서는 쉬는 날까지 울려대는 카톡 소리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스트레스는 나에게 피부병을 가지고 왔고,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가 계속되는 한 피부병은 낫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돈이 필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생활비를 많이 쓰는 편이 아닌 데다가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가족 삼아서 거북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거북이를 키우는 것에는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나이가 되어서 놀고먹는다고 하면 듣기가 좋지 않다. 뭔가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사는 것은 아니므로, 새로운 곳에 취직하는 일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생활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하긴, 남에게 선뜻 내세울 만한 직업이 없다고 하여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라는 곳은 없을지 몰라도 갈 곳은 잔뜩이라서 내 나름대로는 꽤 바쁘다. 어찌나 바쁜지 때로는 점심 먹기를 잊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백수가 되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단 하나. 타루칸 꼬마들이다. 통장에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없어지면 마음이 가난해지기 마련이라서, 아이들에게 줄 무언가를 사는 일에 주저함이 생기기 쉽다. 클락에 갔다가 유리컵을 사면서 내가 빵을 살 돈이 넉넉한지 계산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해외통신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필리핀에서의 한류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그 글로 돈을 벌어서 필리핀 꼬마 녀석들에게 줄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썩 그럴싸해 보였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에서 필리핀 지역의 해외통신원을 선발한다고 하기에 얼른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선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인 코피스(KOFICE)는 문화산업 현황 파악이나 해외 현지 한류 팬들을 위한 문화행사 등을 진행하는 곳인데,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 해외통신원을 두고 각국의 한류 소식을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 코피스에서 보내온 해외통신원 리포트 작성 가이드라인은 길기도 했고, 글자체, 줄 간격은 물론 문장 기호까지 세심하게 적혀 있어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어도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타루칸 꼬마 녀석들에게 갈 경비를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나를 모니터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꽤 힘든 일이라서 온종일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엑소의 멤버가 몇 명인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런 것 정도야 검색해보면 될 일이다. 원고료를 받아서 빵을 잔뜩 사리라. 빵값을 벌 욕심에 내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클락 퓨어골드 쇼핑몰(Puregold Duty Free Clark). 이곳 쇼핑몰은 튜티 프리(면세점)이지만, 인천공항과 같은 면세점은 아니고 그저 세금 부분을 약간 할인해주는 쇼핑몰이다. 달러로 물건값을 매기고, 이걸 페소로 바꾸어 계산하게 해준다.




▲ 타루칸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정말 간단하여서 주방 살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클락 퓨어골드에 갔더니 마침 컵을 세일하고 있기에 한 세트씩 선물하기로 했다.  320개나 되는 유리컵을 피나투보 산으로 들고 가는 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컵이라도 제대로 쓰게 하고 싶어서 쇼핑카트 가득 컵을 담았다. 



▲  필리핀 만세! 나중에 파손된 제품을 가지고 와서 교환이나 환불해줄 수 없다고 하면서 유리컵을 모두 상자에서 꺼내어서 모두 하나하나 깨진 것이 없는지 확인해 주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긴 시간과 여섯 명이나 되는 직원을 필요로 했다. 



▲ 손님이 계산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나갈지 모르므로, 가드 아저씨가 영수증 확인도 꼼꼼하게 한다.  




▲ 클락에서 피나투보로 가는 길에는 비가 세차게 내려서 고생을 좀 했지만, 막상 마을까지 갈 때는 날씨가 개어서 날 기쁘게 했다. 무엇을 가지고 가도 마을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렇게까지 환호하며 기뻐하는 일은 드문 일이라서 매우 뿌듯했다. 




[필리핀 피나투보 자유여행] 마음의 가난을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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