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가전제품을 두루두루 갖추어 놓고 살지 못하는 필리핀 여자들의 삶이 불편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필리핀 음식문화는 한국과 달라서 설거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국그릇 밥그릇에 반찬 그릇까지 갖추어 놓고 식사를 하는 문화가 아니라서, 둥근 접시 하나만 있으면 해결되니 잔치를 한다고 해도 설거지할 것이 많지 않다. 특히 "부들 파이트(Boodle fight)" 형태로 잔치를 하면 그냥 넓적한 바나나 잎을 테이블에 깔아놓고 이런저런 음식을 차려내기도 하는데, 일거리가 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이부스(정식 명칭은Suman sa Ibus이다)"라고 불리는 간식만 해도 그렇다. 코코넛 잎을 이용하여 모양을 만들어 내니, 아주 많이 사서 비닐봉지에 잔뜩 담으면 모를까 환경을 해칠만한 포장지가 나오지 않는다.
딸락 마을 산책을 하다가 이부스를 만들고 계신 할머니를 만났다. 길쭉한 코코넛 잎으로 이부스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신기하여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했는데, 할머니는 당신이 만날 하는 일을 신기하게 여기는 외국인이 더 신기한 눈치였다. 그래서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감탄을 하느냐는 얼굴을 하시면서도 일손을 잠시도 놓지 않으셨다. 빨리 만들어야 오후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 경력 정도 되면 손으로 이부스를 만들면서 대화를 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고, 할머니는 낯선 이에게도 웃어줄 만큼 여유가 있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당신이 벌써 고희(古稀)가 넘으신 나이라고 알려주시면서, 그래도 이제 이 마을에서 이부스를 만드는 사람이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어서 손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이부스를 만들어 파는 것은 크게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일은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법이니, 그렇기도 하겠다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쌀을 씻어서 찌고, 다시 코코넛 잎으로 싸서 모양을 만들고 다시 쪄내야만 되는 과정이란 글로 적기는 간단해도 실제 하려면 쉽지 않다. 원래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이부스 역시 인간의 정성을 꽤 요구하는 음식이라서 사람 손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러니 누가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들겠는가. 게다가 기름에 튀긴 도넛이니, 고소하게 구운 와플이니 새로운 간식의 등장으로 이제 이런 간식은 촌스러운 맛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부스는 가격이 저렴하고, 몇 개만 먹어도 든든한 요깃거리가 되니, 할머니의 손맛을 찾는 사람은 여전히 있었다. 그러니 젊은 남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하며 오후를 즐기는 것을 옆에 두고, 나와 잠깐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할머니의 손은 쉴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끝에서 코코넛 잎이 단단하게 이부스의 특유의 모양을 만들어 냈고, 이내 테이블 가득 이부스가 만들어졌다. 재료비를 빼고 나면 할머니의 용돈 정도도 나오지 않을 터이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찾는 사람만 있다면 몇십 년 전에 그랬듯이, 그리고 어제도 그랬듯이 당신이 살아있는 한 계속 이부스를 만드실 것이었다.
▲ 간단해 보이면서도 어려운 이부스 만들기!
▲ 할머니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이부스가 하나 만들어졌다. 이렇게 형태를 만들어낸 뒤 찜통에 쪄서 떡처럼 되면, 코코넛잼이나 설탕 혹은 망고 등을 곁들어 먹게 된다.
[필리핀 딸락 여행] 코코넛 잎을 이용하여 전통간식 이부스 만들기
- 2017년 8월. 필리핀 마닐라.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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