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구나(Laguna)에서 산토토마스(Santo Tomas) 지역 쪽으로 가다가 퍽 신기한 것을 보았다. 산길을 따라 마을까지 길을 따라 은색으로 반짝이는 파이프 관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은색 파이프가 단순히 "그 동네에 가니 커다란 관이 있더라."는 정도로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컸다. 게다가 바로 근처에는 군부대도 보였다. 인적조차 없는 산길에 이런 시설이 왜 있는 것일까 싶었지만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어 차를 세우고 직원에게 묻기로 했다.
"이제 뭔지 알았죠? 그런데 이거 비밀이니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이 시설이 대체 무슨 시설인지 한참이나 내게 설명해놓고 직원은 굳이 비밀이라고 하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정말 비밀이라면 굳이 사무실에서 종이까지 꺼내 가지고 와서 Geothermal energy라는 단어까지 적어가며 내게 이 시설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일까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매우 엄숙한 얼굴로 아저씨의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하고 공손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제 와서 아저씨를 배신하고 비밀 누설을 하자면, 산길에서 본 멋진 시설은 바로 지열발전소(Geothermal Power Plant)시설이었다. 지구 내부의 열(지열에너지)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말이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바로 근처 주변에 마킬링 온천지역(Maria Makiling Hotsprings)임이 생각났다. 라구나 칼람바의 이 지역에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88온천을 비롯하여 온천 시설이 수십 개 있는데, 이 발전소에서는 그걸 에너지 자원으로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좀 더 알아보고 신기한 것을 알았다. 뜻밖에 필리핀이 세계적인 지열 에너지 생산국가라는 점이다. 세계지열협회(IGA) 자료에 의하면 지열 에너지를 생산량 1위는 미국, 그리고 다음 2위가 필리핀이라고 하니 말이다. 실제 필리핀 에너지 공급량의 17% 정도가 지열 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다고 하는데, 마킬링 온천 지역뿐만 아니라 소르소곤(Sorsogon), 레이떼(Leyte), 네그로스섬(Negros Oriental) 그리고 민다나오섬(Mindanao)까지 필리핀 곳곳에 시설을 갖추고 있단다.
산 몇 개를 감싼 커다란 파이프를 보며 새삼스럽게 필리핀이 부러웠다. 가지고 있는 천연자원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열발전소까지 있을 줄이야. 팡가시난의 수력발전소(San Roque Dam)도 그렇고, 라구나 호수 옆 풍력발전소(Rizal Wind Farm)도 그렇고 관광 명소로 이용될 만큼 규모나 시설이 엄청난데, 그런 풍경을 볼 때마다 가끔 대체 이 나라에 없는 것이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풍부한 천연자원을 제대로 활용을 한다면 그 어느 곳보다 멋지게 국가 발전을 할 수 있을 터인데, 자신의 나라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필리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산토 토마스 지역의 지열발전소 파이프. 그 규모가 예사 규모가 아니었다.
▲ MAIBARARA GEOTHERMAL, INC 지열발전소 시설
▲ 지열발전소 직원 덕분에 지열(Geothermal)이라는 단어를 새로 배웠다.
▲ 지열발전은 연료 연소에 따르는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에너지이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에너지 생산 방식이지만 초기 단계에서 지열발전소의 건설비가 많이 드는 관계로 자연 여건이 된다고 해도 시설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는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이나 영동고속도로 덕평복합휴게소가 이 방식을 채택,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 라구나 여행] 필리핀에도 지열발전소가 있다고?
- 2017년 6월. 필리핀 마닐라.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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