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로 가서 손을 네 번이나 씻었지만, 손가락 사이에 벤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 쇼핑을 가려고 했는데, 쇼핑센터에 가는 것이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온몸에 게(CRAB) 냄새가 진동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정신없이 게를 먹는 동안 옷에 국물이 제대로 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냄새가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은 정말 기분 좋게 배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내가 필리핀에서 순전히 게로만 배를 채우다니! 그것도 단돈 399페소로도 말이다.
마닐라 바클라란(Baclaran)시장 입구 "빅토리 푸드마켓(Victory Food Market)" 건물 5층에 있는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에서 최근 게(CRAB) 무한리필 이벤트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년 연말에 문을 연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은 원래 한국백화점 푸드 코트 형태로 갖가지 필리핀 음식을 파는 곳인데, 공사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건물 바깥과 달리 매장이 매우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세련된 편이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시장 입구에 있어 장사가 잘 안되었는지 아니면 어디 게 도매상을 새로 뚫기라도 했는지, 얼마 전부터 “게 무한리필 프로모(UNLI CRAB promo)”를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 딱 정해져 있고, 퇴근 시간에 가면 줄이 꽤 길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지만 무한대로 게를 먹을 수 있다는 소식에 꽤 구미가 당겼는데, 실상 나처럼 게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 다른 곳과 달리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식사 가격이 딱 399페소(한국 돈으로 9천 원 정도)라니 말이다. 이곳에서는 부가세나 서비스요금의 추가도 없이 딱 399페소로 요금을 부과하는데, 여기에 밥과 아이스티까지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혹 싱싱하지 않거나 아주 크기가 작아서 먹기 힘든 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바로 근처에 수산시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싱싱한 것을 가져오지 않을까 짐작하며, 운 나쁘면 한 끼 다이어트하는 셈 치기로 하고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크고 먹음직스러운 게를 보았으니, 게의 싱싱함이나 크기에 대한 내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는 법. 이곳의 서비스 속도는 정말 사람을 지치게 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가게는 직원 숫자가 적지 않고, 또 직원 태도가 매우 친절한데도 이상하리만큼 느리게 고객 응대를 하고 있었다. 요즘 필리핀에도 인기가 좋은 맛집은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전화 예약까지 했지만, 막상 3시 정각에 가서는 미처 아직 게요리 준비를 다 하지 못하여 5시에 와야 할 것 같다는 안내를 받았기에 하는 이야기이다. 그럴 것이면 전화를 걸었을 때 미리 3시 예약은 받지 않는다고 안내를 해주어야 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주방에서 아직 음식이 준비되지 않아 식사할 수 없다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뭔가 가게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보일 정도로 서빙이 느렸는데, 손님 인원이 어느 정도 파악되고 난 뒤에야 게를 요리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여튼 "다시 5시에 예약되도록 도와줄까요?"라는 직원 이야기에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일부러 게를 먹으러 바클라란 시장까지 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호기심과 게에 대한 열망이 기다림에 대한 지루함보다 강하였으니, 잠자코 5시에 다시 오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두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가게로 갔는데, 그런데도 막상 서빙을 받은 것은 5시 30분이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아무리 필리핀이지만 너무 한다고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 모든 지루함과 허기짐과 짜증이 게를 받아드는 순간 사라졌다. 직원 이야기가 자신들은 도매상에서부터 살아있는 게를 가지고 와서 바로 요리를 해준다고 하더니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기대 이상으로 게가 싱싱하고 맛있었다. 칠리갈릭의 매콤함의 맛이나 시트러스 버터의 짭짤함의 맛도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 없이 괜찮아서 퍽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오늘 식사가 마지막 식사라도 된다는 기세로 가득히 쌓아 올린 게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우고야 말았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두 번째 게를 주문하고 나서야 여유가 생겨 그제야 주변 테이블을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 모두 게살을 발라먹냐고 분주했다. 커다란 매장을 가득히 채운 사람들이 한결같이 격렬하게 게를 먹으며 부지런히 흰 비닐봉지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라니! 게의 집게발을 자른다고 여기저기에서 특유의 달칵, 가위 소리가 들려왔다. 하루에 500kg 이상의 게가 서빙되어 나간다고 한 가게 직원의 이야기가 허풍만은 아닌듯했다.
[필리핀 마닐라] 바클라란 시장 입구의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 게(CRAB) 무한리필 프로모
■ 주소 : 5Th Floor Victory Food Market Mall, Baclaran, Parañaque, Kalakhang Maynila, 필리핀
■ 위치 : 바클라란 시장 입구 빅토리 푸드마켓(Victory Food Market) 건물 5층
■ 운영시간 :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 오후 3시부터 오후 6시 사이 / 오후 7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 예약 전화번호 : 0999-897-1775(글로브) / 0956-447-7951(스마트)
- 399페소 게(CRAB) 무한리필 행사는 기본적으로 선착순 입장(First Come First Serve) 형태로 손님을 받고 있지만, 수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는 예약을 할 수 있다.
- 수요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는 499페소로 뷔페(Buffet) 메뉴를 업그레이드하게도 해주는데, 아무도 업그레이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굳이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게만 먹어도 매우 배부르다.
▲ 마닐라 바클라란 시장
▲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이나 바클라란 시장 안에 주차 공간이 있을리가 없다.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 애매하다면 헤리티지 호텔 (Heritage Hotel) 방향으로 좀 더 와서 Kenny Rogers Roasters 앞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 졸리비 바로 옆에 빅토리 푸드마켓이 있다. 이곳 빅토리 푸드마켓 5층에 피스타푸드홀이 있다.
▲ 입구에 들어서면 게를 몇 마리 먹을 것이냐고 물어본다. 무한리필이라고 하더니 왜 몇 마리를 먹을 것인지 물어보는 것일까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손님이 먹는 양을 가늠하면서 주방에서 바로 게를 요리하기 때문에 묻는 것 같다. 일단 1인 기준 4마리~5마리 정도를 부르고, 먹어보고 부족하면 다시 추가 주문하면 된다. 주방에 준비된 게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계속 더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 매장. 매장이 매우 넓고 깔끔하다. 바클라란(Baclaran)시장 안에 있어 청결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 밖으로 매장이 쾌적하니 매우 안심되었다.
▲ 유리창 바깥으로는 바로 바클라란 교회(정식 명칭은 Our Mother of Perpetual Help Redemptorist Church)가 보인다.
▲ 요금은 선불로 내게 되어 있다. 영수증과 함께 게를 자를 가위와 음식물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를 가져다준다.
▲ 몰래 와서 공짜로 밥 먹는 사람이 많은지, 놀이공원과 같은 팔찌를 채워준다.
▲ 무한리필이라고 하여 뷔페처럼 셀프서비스인 줄 알았는데 직원이 음식을 하나하나 테이블까지 서빙해준다. 아무래도 게를 만진 손으로 음식을 직접 가져오기는 불가능하여서 그런 것 같았다.
▲ 아이스티 맛도 생각보다 맛있다.
▲ 게는 칠리갈릭(Chili Garlic Crabs)이나 시트러스 버터(Citrus Butter Crabs) 중에서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다. 물론 둘 다 맛볼 수도 있다.
▲ 게가 속이 제법 꽉 찼다.
▲ 대체 게는 어떻게 해야 예쁘게 먹는단 말인가? 게를 먹는 모습이란 자칫 매우 호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연애 초기 단계에서나 점잖은 관계에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친절한 매장 직원들. 여기는 서비스가 매우 느리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곳이다.
▲ 잠깐 주방 앞에서 게 찌는 모습을 구경했다.
▲ 모든 뷔페의 공통 안내 사항이지만, 벽면에 음식물을 남기지 말라고 적혀 있다.
[필리핀 마닐라] 바클라란(Baclaran)시장 입구, 피스타푸드홀(Pista Food Hall)
- 2017년 6월. 필리핀 마닐라. 콘텐츠 스튜디오 필인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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