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지루한 영화 속에 출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처럼 사는 것도 아니건만, 내 삶에 "ECQ 시즌2"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외출을 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통금 시간이 오후 6시부터 시작된다는 소식은 우울하게만 들린다. 자발적으로 바깥출입을 삼가는 것과 강제적으로 외출의 금지되는 것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인간의 경험은 소중한 것이라서, 작년 ECQ 시즌1 기간 중의 경험이 나에게 장보기를 해두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쇼핑몰이 문을 닫을 뿐 슈퍼마켓이나 약국은 평소처럼 문을 연다고 했지만, 외출증을 가져오라는 소리를 시작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바랑가이 확인증을 받으려고 바랑가이 사무소에 다섯 번도 넘게 전화를 해야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장을 보러 나가겠다고 바랑가이에 가서 외출증을 받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기보다는 맨밥만 퍼먹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먹는 즐거움이 참으로 큰 요즘이었다. 집 안 곳곳에 식자재를 쌓아두는 것은 마음이 느긋해지는 효과가 있었으니, 장보기에 나서기로 했다.
실로 빠른 속도로 장보기를 마치고, 잠깐 보니파시오에 가보기로 했다. 볼일은 딱히 없었지만, 뭔가 색다른 풍경을 눈 속에 담지 않으면 머리가 멍청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리 위의 것들은 정지된 듯 조용했다. 이 조용함이 한낮의 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19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이렇다면 좀 슬픈 일이었다. 나는 그저 더워서 다들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닐라 생활] 나는요 갈 곳도 없고 심심해서 나와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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