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중 '삼고초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한자로 석 삼(三), 돌아볼 고(顧), 풀 초(草), 오두막 려(廬)를 써서 초가집을 세 번 찾아갔다는 이 말은 유비가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제갈량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정성을 들였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유비의 나이와 지위를 보았을 때 스무 살이나 어린 제갈량을 등용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간곡하게 성의를 보였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일이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예로부터 세상에 정성 없이 되는 일이 되는 일이 없다고 하였으니, 비단 인재를 등용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일에 있어 정성을 들이는 일은 퍽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능이 좀 부족한 나와 같은 인간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결과의 상당수는 재능보다 노력에서 좌우되기도 한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떤 것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오죽하면 공부도 누가 오래 버티느냐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을 다 하겠는가. 하지만 밀크티 한번 먹어보겠다고 보니파시오에 두 번, 마카티에 한번, 합계 세 번이나 가게를 찾아가는 정성을 보인 것은 순전히 내가 줄 서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이나 갈 바에는 그냥 줄을 서도 좋지 않겠는가 싶지만, 나에게는 줄을 서는 기다림보다 '다음 기회에'로 미루는 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한가해지면 그때 사서 마셔보리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필리핀에 체류 중인 중국인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겠으나, 관광객으로 위장해 필리핀에 입국한 뒤 불법체류 중인 중국인 노동자 수가 4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중국인이 늘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몰라도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 밀크티 가게가 눈에 띄게 많이 생겼다. 타이거슈가(TIGER SUGAR), 더앨리(The Alley), 차차고(Chachago), 싱푸탕(Xing Fu Tang) , 이팡(YiFang Taiwan Fruit Tea) 등과 같은 밀크티 전문점이 인기를 끌자 일반 식당에서까지 밀크티를 판매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맥도날드에까지 Milk Tea McFloat라는 이름의 49페소짜리 밀크티 메뉴가 등장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딤섬 집이 아무리 많아도 '딘타이펑(Din Tai Fung)'이 독보적인 인기를 차지하고 있듯이, 밀크티 가게가 많이 생겼어도 그중 인기인 것이 있는 법이다. 타이거슈가는 '흑설탕 버블 밀크티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마닐라의 많고 많은 밀크티 가게 중에서도 월등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만 현지의 맛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밀크티 컵을 손에 쥐고 페이스북이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이 잠깐 유행처럼 되기도 했다.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릿에 매장이 처음 생겼을 때 뱀 똬리처럼 긴 줄을 서 있었을 때만 해도 개업 효과인가 했지만, 그다음에 다시 가봐도 줄의 길이가 줄어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한동안은 인기가 계속될 모양이다. 하긴, 마카티 매장에 이르러서는 가게 앞 공간에 줄 설 공간이 부족하여 쇼핑몰 한쪽에 줄을 쳐놓고 따로 대기 장소를 만들 지경으로 인기를 끌어서 바쁜 사람은 도무지 마실 수 없을 정도이다. 바로 앞에 이런저런 음료수를 파는 가게가 여럿인데, 그 가게 주인들이 보면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싶을 정도로 연일 손님으로 북적대곤 했다. 하지만 몹시 더운 날 오전 이른 시간에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에 가면 그렇게나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지만, 주문대 앞에 두어 명이 서 있을 뿐이니 그 정도의 기다림은 감수할 수 있다.
이런 형편이니 그렇게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마신 밀크티 맛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내 입맛이라는 것이 절대 미각과는 좀 거리가 먼 편이라서 타이거슈가의 밀크티 맛이 정말 완벽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타이거슈가에서 이야기하듯이 "10년 이상의 연구개발 끝에 대만산 특제 흑설탕만을 완벽한 비율로 볶아내어 만든 완벽한 풍미"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타이거슈가(TIGER SUGAR) 라는 이름이 흑설탕에 재운 타피오카가 우유 안에서 퍼지는 모습이 마치 호랑이 무늬 같아 보여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컵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호랑이 무늬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흑설탕에 재운 버블은 쫄깃하고, 지나치게 달콤하지 않으니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최근 시도해본 이런저런 브랜드의 밀크티 중에서는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누가 또 사서 마실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확실한 어투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한번 마셔보리라고 벼르고 벼르던 것을 드디어 손에 쥐었다는 뿌듯함이 보너스로 따라와서 그럴 수도 있다.
[필리핀 마닐라] 타이거슈가(TIGER SUGAR) 필리핀 매장 위치
■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릿
- 주소 : 11th Avenue, Bonifacio High Street, Taguig, 1632 Metro Manila
■ 몰 오브 아시아
- 주소 : Level 1, South Parking Building, SM Mall of Asia
■ 마카티 글로리에따 4
- 주소 : 2nd Floor, Glorietta 4, Ayala Center, Ayala Ave, Makati, 1200 Metro Manila
■ SM메가몰
- 주소 : 3rd Level, Mega Fashion Hall, SM Megamall. Bldg J Vargas cor, Epifanio de los Santos Ave, Village, Mandaluyong, 1555 Metro Manila
■ 이스트우드몰
- 주소 : 2nd Floor, Eastwood Mall, 116 Orchard Rd, Bagumbayan, Quezon City, 1110 Metro Manila
■ 퀘존 트라이노마
- 주소 : Level 2, Food Choices, TriNoma. North Ave, Quezon City, Metro Manila
■ 퀘존 SM North The Block
- 주소 : Ground Floor, Food Circuit, SM North The Block. Epifanio de los Santos Ave, Quezon City, Metro Manila
▲ 필리핀 타이거슈가의 버블티 가격표. 한국에서는 대체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흑설탕 버블 밀크티가 4900원이고, 흑설탕 티라떼가 4200원이라고 한다. 필리핀 타이거슈가(TIGER SUGAR)의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거리
▲ 수십 명이 줄을 서 있던 매장 오픈 초기의 모습. 타이거슈가(TIGER SUGAR)는 올해 1월에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에도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미슐랭도 인정한 맛"이라고 하면서 더욱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
▲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 타이거슈가(TIGER SUGAR) 마카티 매장. 줄 서는 구역이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 어느 한가한 일요일 아침, 보니파시오
▲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리트 매장이나 마카티 매장 모두 테이트아웃 전용 매장이다. 시원한 에어컨을 앞에 두고 먹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앉아서 밀크티를 즐길 수 있는 의자가 없어서 아쉽다. 그나마 마카티는 쇼핑몰 안이라서 괜찮지만, 보니파시오는 야외라서 줄 서기가 난처하다. 그늘도 거의 없어서 밀크티 먹기 전에 더위 먼저 먹을 것처럼 매우 덥다.
[필리핀 마닐라] 삼고초려 흑설탕 버블 밀크티 - 타이거슈가(TIGER SUGAR) 매장 위치
- 2019년 6월, 필리핀 마닐라, written by Salin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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