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조차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날이었다. 구름마저 멈추어 선 하늘은 바라만 봐도 너무 덥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나온다. 머리를 감고 외출 준비를 하는 잠깐 동안에도 온몸에 더운 기운이 엄습한다. 그래도 마스크를 두 개 쓰는 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페이스쉴드까지 쓰면 얼굴이 이내 땀투성이가 될 터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더위보다 무서웠다.
답답하여 쇼핑몰이라도 잠깐 다녀와야 마음이 가라앉을 듯하여 반찬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마카티(Makati City)에 있는 아얄라 서킷 쇼핑몰(Ayala Malls Circuit)에 갔다가 매우 흥미로운 광경을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삼겹살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물론 요즘 필리핀에서는 한류 바람이 매우 거세고, 삼겹살은 누가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격렬한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에서 식당 안에서의 식사를 금지하고 있으니, 삼겹살라맛 식당에서 궁여지책으로 바깥에 테이블을 놓고 영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쇼핑몰 내 공용 공간에 테이블을 설치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개선해보려는 주인의 의지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오후 2시란 시간이 삼겹살을 먹기 적당한 시간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뜨거운 숯불을 앞에 두고 삼겹살을 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어떤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더 기묘한 것은 손님이 꽤 많았음에도 테이블 주변이 조용했다는 것이다. 웃고 떠드는 일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지만 더워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 더위를 참고 고기를 굽고 있다니, 아마도 배가 고프기보다는 그저 무엇이라도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필리핀 마닐라] 5월의 더위와 삼겹살에 대한 필리핀인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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