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카메라도 있고, 고장 나지 않은 카메라도 있고, 카메라만큼은 잔뜩이지만 가까운 곳에 산책하러 나갈 때 사용할 요량으로 잠바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카메라를 하나 더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짧은 코스였기는 했지만 라메사(La Mesa) 트래킹을 하면서 DSLR 카메라를 들고 갔다가 다리보다 어깨가 아픈 듯한 경험을 한 것이다.
마카티 그린벨트의 카메라 매장을 이곳저곳 돌아보고 내가 고른 모델은 소니의 RX100 VII 콤팩트 카메라. 그런데 소니 RX100이 필리핀에서도 대단히 인기인 것인지 그린벨트에 있는 소니 매장에서 물건이 없다고 알려왔다. 직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예약하면 물건을 가져다 놓겠다고 했지만, 이런 것을 살 때만큼은 천상 성질 급한 한국인이다. 예약을 하고 찾으러 오가는 과정이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메가몰에 있는 소니 매장에 가서 구매하기로 했다.
메가몰에 도착하자마자 4층으로 올라가서 66,000페소(한화 약 160만 원)를 내밀고 새로운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 RX100 VII의 필리핀 내 판매 가격은 69,999페소. 하지만 필리핀에는 아직도 현금 할인을 해주는 곳이 많다. 소니 카메라 역시 현금을 내면 약간의 할인을 해주는데 RX100 VII은 3,999페소를 깎아준다고 했다. 메인으로 쓰고 있는 카메라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서브 카메라 가격으로는 다소 비싼 편이지만 66,000장의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으면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이 된다. 물론 사진을 66,000장이나 찍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만,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사고 싶은 마음이 우선순위를 차지한 이상 그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소비밖에 없으니 당분간 소고기를 줄이고 사진을 택하기로 했다.
[필리핀 생활] 마닐라 메가몰에서 소니 RX100 카메라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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