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꼰띠랑(konti lang)라는 말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절한 목소리로 "꼰띠랑(조금만)"을 세 번이나 외치고 자리에 앉았건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내 왼쪽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 나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머리카락도 한번 짧아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나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일에는 화를 내기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으려 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와 내가 '조금'이란 단어에 대하여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통감하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오른쪽도 뭉텅 잘려 나가길 기다렸다.
오늘 내가 만난 이발사 아저씨의 이름은 지미였다. 바리깡이며 가위 등의 장비는 투박하지만 이발기를 다루는 손놀림이 좋은 것이 꽤 오래 이발사로 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미는 내가 단정한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 손상된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열심히 머리를 자르는데, 너무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터라 차마 내가 원한 것은 그저 듬성듬성 자라나고 있는 뒷머리를 조금 잘라내는 정도였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가져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상한 머리카락을 모두 자르면 대머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지만, 지미가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다. 그는 한참이나 집중하며 연신 머리를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눈에 띄게 잘라내었다. 그리고 30여 분이 흐른 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랄까, 작은 샴푸 한 통만으로도 일 년은 버틸 수 있는 환경 친화적인 모습이다.
그래도 지미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발소에 손거울이 없는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사진을 찍어서 내게 내밀더니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왔다. 친절한 목소리로 부족하면 더 잘라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의자 주변으로 수북하게 쌓여 있는 머리카락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던 나였다. 굉장히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고, 그래도 뭔가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지미는 지난번 미용사와 다르게 머리를 매끄럽게 잘라냈지 않았는가. 머리는 계속 자란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전혀 까다로운 손님은 아니지만, 지난달에는 미용사가 머리카락을 바나웨 라이스 테라스처럼 층층이 잘라놓아서 결국 화를 내고 의자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음에 쏙 드는 미용사를 만나는 일이란 마음에 쏙 드는 회사를 만나기보다 어려운 모양이다.
[마닐라 생활] 이발사 지미가 생각하는 타갈로그어 꼰띠랑(Konti lang)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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