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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음식•맛집

[필리핀 마닐라] 별 다섯 개! 필리핀 최고의 레스토랑 - 카사 로세스(Casa Roces)

by PHILINLOVE 2020.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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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어린이였을 때 나는 세상에 대해 오해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뭔가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 같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진 않으니 하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있어 어른이 되어서 좋았던 일은 모든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정도였다. 요즘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그리고 슬그머니 잔소리를 듣지 않음을 좋아하는 마음과 아쉬워하는 마음의 무게를 비교해보기도 한다.


서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고 결혼하였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이가 꽤 좋은 편이셨다. 젖먹이 손녀딸의 보호자가 되면서 부부싸움이란 것을 시작하셨는데, 표면적인 승자는 늘 할아버지였다. 무조건 아이 편인 할아버지와 가정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할머니가 의견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어른들의 잔소리를 무척이나 들어야 했던 나였지만, 이런저런 잔소리 중 가장 듣기 싫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좋아하는 음식의 개수보다 싫어하는 음식의 개수가 더 많았던 나에게 밥상을 앞에 두고 끼니때마다 펼쳐지는 할머니의 잔소리는 9시 뉴스만큼이나 지루했다. 다행히 내게는 할아버지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면 괜찮아진다는 식의 이야기로 할머니의 잔소리를 물리쳐주곤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세상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도 내 오해였다. 할아버지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나이가 들어도 그 편식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편식쟁이 어린이가 자라서 편식쟁이 어른이 된다고 할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기세등등함은 사라져버렸지만, 편식하는 고약한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잔소리해줄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만 떠올리지 않는다면, 싫어하는 음식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른이 되면서 누리게 된 편리함이다.


마르셀라 아곤실로가 필리핀 최초의 국기를 만들 때 썼다는 골무를 볼까 싶어서 말라카냥궁 박물관 견학을 하러 갔지만, 골무는 현재 따로 보관하고 있어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견학을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가 깨달은 것은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것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벌써 2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시나브로 해가 진 것도 모르고 재미나게 놀던 아이처럼 갑자기 급격하게 허기가 찾아왔다. 뭐라도 먹어야지 움직일 수 있을 듯한 기분에 바로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날듯이 뛰어갔는데 뛰어간 보람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녹아있는 안락한 분위기와 신선한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음식,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득 가지고 있었다. 검은색 파에야(Paella) 위에 올려진 새우가 어찌나 싱싱하고 맛이 좋은지, 개펄에서 진주를 품은 조개를 발견한 기분이다. 거기에 적당히 풍미가 느껴지는 하우스 와인까지. 점심 한 끼 먹는 것에 900페소씩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찌나 맛있게 점심을 먹었는지 식사비로 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이날 이후 카사 로세스 레스토랑은 내게 있어 필리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을 발견한 뒤로 누군가 내게 필리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별로 고민하지 않고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레한드로 로세스와 마누엘 L. 케손 대통령 



말라카냥궁 옆에 있는 카사 로세스(Casa Roces) 레스토랑은 1997년에 동남아시아 작가상을 받았던 작가 알레한드로 로세스(Alejandro Reyes Roces)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만든 레스토랑이다. 알레한드로 로세스는 마닐라 타임스(The Manila Times) 신문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한데, 신뢰할만한 저널리스트로서 필리핀 신문 산업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마카파갈 대통령 시절에는 교육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2011년 5월, 로세스가 타계하자 그의 가족들은 산 미겔(San Miguel)에 있는 옛집을 레스토랑 겸 카페로 개조하여 오픈했는데, 그게 바로 카사 로세스 레스토랑이다. 1930년대에 지은 집의 따뜻한 분위기를 거의 해치지 않고 잘 개조해서 미국 식민지 시절 당시 상류층 가정집의 안락한 인테리어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생전에 로세스가 "필리핀인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환대로 유명하며, 필리핀인의 환대는 음식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그의 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이다.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 어떤 것을 주문해도 맛이 좋은 편이다. 식빵이니 케이크 등 베이커리류도 상당히 수준 높은 맛을 보여준다. 엔사이마다(Ensaymada) 빵이나 엠파나다(empanada)를 먹고 맛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면, 이곳을 방문해보면 좋을 정도이다. 음식 맛처럼 개인 취향이 담뿍 담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확고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이 레스토랑만큼은 다소 까다로운 사람이 가도 흡족해하지 않을까 여기고 있다. 내 기준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음식이나 가게 인테리어, 서비스 그 어떤 것도 흠을 잡을 것이 없다. 좀 특별한 것을 먹고 싶은 날이나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때 방문해도 괜찮을 맛집이라고 할까. 필리핀 전통음식 또는 필리핀에서 먹는 스페인 음식은 별로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다면 이곳에 가보면 좋을 듯하다.  




[필리핀 마닐라] 카사 로세스 레스토랑(Casa Roces)


■ 전화번호 : (02) 8735 5896

■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10시 




■ 주소 1153 JP Laurel St., cor. Aguado St., San Miguel, Manila

■ 위치 :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냥궁(Malacanang Palace) 박물관 근처 



▲ 필리핀 마닐라. Presidential Communications Operations Office



▲ 레스토랑 입구. 말라카냥궁 앞까지 가는 일은 좀 번거롭지만, 맛있는 음식은 이동의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든다.






▲ 카사 로세스(Casa Roces) 레스토랑 









▲ 레스토랑 내부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자리이다. 





▲ 이곳에서 파는 치아시드 식빵은 정말 맛있다. 늘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파에야(Paella)




▲ 음식에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 라잉(Laing)





▲ 엔사이마다(Ensaymada)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진심으로 맛있다.



▲ 엠파나다(empanada). 120페소라고 하면 비싸게 여겨지지만, 전통적인 방식대로 오븐에 구워내어 정말 맛있다.






▲ 2층으로 올라가면 단체 룸이 있다.



▲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라 주차 공간이 많지 않다. 주차하기가 쉽지 않지만 발렛파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정원 곳곳에 앉을 곳이 마련되어 있다. 








▲ 메뉴판. 음식 가격은 살짝 비싼 편이지만, 대신 한 끼를 먹어도 완벽히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기분을 준다. 그리고 음식의 양이나 질을 보면 딱히 비싼 가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필리핀 마닐라] 별 다섯 개! 필리핀 최고의 레스토랑 - 카사 로세스(Casa Ro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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