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낙 빵을 자주 사고, 돈도 상당히 쓰곤 하여서 당연히 빵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롯이 내 착각이었다. 그러니까 빵집에 가고, 빵집 주인과 이야기를 하고, 그 빵을 꼬마들에게 나누어 주는 과정 자체를 좋아했을 뿐 빵 자체를 좋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자전거를 타고 빵을 사러 가면서 길 위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이었다.
외식이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대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곳, 그리고 쇼핑몰 안 좁은 공간에 있지 않으면서도 손님이 많지 않고 조용한 곳을 찾으려니 그런 식당이 많을 리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곳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드는 법이라 늘 마지막 조건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내 까다로운 조건을 맞춘 곳은 의외로 마카티의 구석에 있었다. 금융중심지 마카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끔 늘 한적한 아모로솔로 거리의 모퉁이에서 내 취향에 잘 맞는 베트남 식당을 찾은 것이다.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지만,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의자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노트북을 놓고 한가롭게 무언가 하는 것을 보니 손님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바깥에서 보기보다 내부가 꽤 넓었는데, 매장 한쪽은 아예 포장 코너로 꾸며져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배달 위주로 매장을 운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주방 입구에서는 주인아주머니로 짐작되는 분이 십자수를 놓고 계셨다. 주문서를 가져다주면서 가까이 가서 보니 상당히 큰 크기의 성화가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잠깐 옆에 서서 지켜보았지만, 그동안 새끼손가락 손톱만큼도 채워지지 않았다. 바느질 따위에는 도통 취미가 없어서 찢어진 반바지를 계속 입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십자수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아주머니의 부지런한 손끝을 바라보는 일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는 실에 적힌 한글이 눈에 띈다. 요즘은 필리핀 소주뿐만 아니라 중국산 제품에도 한글이 종종 쓰여서, "브랜드 크로스 스티치"라는 한글만 보고는 실이 정말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래도 베트남 아주머니가 한글이 적힌 실을 쓰는 것이 퍽 즐겁게 느껴졌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상표를 읽어 보이는 것으로 내가 한글을 깨쳤음을 자랑하고,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한 뒤에야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참으로 맛있고 즐겁게 저녁을 먹으면서 맛있는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서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누군가 한가롭게 십자수를 놓는 모습을 보아서 즐거운 것인지 생각해보았는데 후자 쪽이 좀 더 강하게 다가왔다. 어찌 된 까닭인지 코로나19라는 단어를 알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필리핀 마닐라] Vit Map Taste of Vietnam
■ 전화번호 : 0945 716 8116
■ 주소 : 126 Amorsolo Street, Legazpi Village, Makati, 1229 Kalakhang Maynila
■ 위치 : 마카티 아모로솔로 거리 / 리틀도쿄(Little Tokyo) 근처
[필리핀 마닐라] 베트남 음식이 생각날 때 가볼 만한 곳 - Vit Map Taste of 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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