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호텔 예약을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면 오후의 햇살이 완전히 줄어들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숙소 예약이다. 그런데 연말이라고 그러는지 호텔 예약사이트에 마땅히 묵을만한 장소가 보이지를 않았다. 아고다를 죄다 뒤져도 가격이 상당히 비싸 방문이 꺼려지는 곳이 아니면 하룻밤 머물기도 꺼려지는 시설을 가진 곳만 몇 군데 보인다. 다행히 에어비앤비에는 썩 마음에 드는 숙소가 보였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였다. 그래도 사가다(Municipality of Sagada)로 가는 길목인 데다가 산 위에 있는 조용한 목장(Rancho)이라는 설명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으니, 일단 예약 버튼을 눌러놓고 호스트에게서의 답장을 기다리며 근처로 이동했다.
산가브리엘 뮤니시펄 홀(San Gabriel Municipal Hall)을 지나 방문하면 된다는 설명을 보고 산가브리엘까지 갔지만 엘리아 목장(Rancho Elias)의 호스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에게서 상세 주소를 받아야만 하는데 호스트에게서 연락이 없으니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을뿐더러 오늘 밤 머물 수 있는지조차 묘연하다. 동네 트라이시클 아저씨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아느냐고 물었더니 위쪽으로 40분은 더 가야 될 듯하다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아저씨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다. 숙소 예약이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확실하지도 않은 곳으로 가기는 꺼려져서 에어비앤비에 나온 정보를 통해 페이스북을 검색해보고 호스트가 보라카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호스트가 페이스북에 올린 호핑투어 사진은 너무도 즐거워 보였지만 이래서야 답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어 마음은 급한데 대체 어떻게 하면 현명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다행히 호스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호스트 왈, 목장에 관리인이 있어서 열쇠를 줄 수는 있지만 농장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방문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나. 이미 산가브리엘까지 와서 포기하기는 아쉬우니 일단 가보겠다고 해놓고 관리인의 핸드폰 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험난한 시간은 시작되었다.
"뭐? DMMMSU? 그게 뭐예요? 거기에서 라콩 초등학교 쪽으로 올라오라고요?"
목장 관리인이라는 꾸야(젊은 남자를 지칭)는 우리가 산가브리엘 일대의 지리를 아주 잘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길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뭐라고 한참이나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관리인과 한참이나 통화를 한 아자가 고개를 갸웃대더니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라콩 초등학교(Lacong Elementary School) 쪽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DMMMSU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한참이나 검색을 하더니 활짝 웃으면서 돈 마리아노 마르코스 메모리얼 주립대학(Don Mariano Marcos Memorial State University)을 말하는 듯하다고 알려준다.
돈 마리아노 대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6시가 지나 주변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런 산속에 어째서 이렇게 큰 규모의 대학이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자 설명에 의하면 농업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라서 그렇다나. 어쨌든 목장 관리인의 안내에 따르면 학교 후문에서 나오면 농구장이 있고, 그 농구장 옆으로 난 산길을 올라오면 된다는데 너무 어두운 탓에 한참을 빙빙 돌아도 대체 어디에 농구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문도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럿이다. 길을 좀 묻고 싶어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아쉬운 와중에 멀리 불빛이 보이기에 달려갔더니 학교 기숙사 건물이다. 마침 건물 앞에 사람이 두 명 나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길을 물어보고 오겠다며 차에서 내린 아자가 대체 무어라고 상황을 설명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참만에 와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100페소로 해결을 했다고 알려왔다. 기숙사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가 보이기에 산길 입구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필리핀 경찰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한 콘보이 서비스를 라유니온의 깊은 산골 마을에서 받아보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콘보이(Convoy)
필리핀 경찰 호송대의 에스코트 서비스. 경찰이 오토바이 따위를 타고 차량을 호위하는 VIP 의전 서비스이다. 비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유료 서비스라서 서비스 가능 여부 및 비용은 경찰과의 협의 후 정해진다. 마닐라 시내의 차량 정체가 워낙 심하다 보니 마닐라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이동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 여행] 산가브리엘 산속의 콘보이(Convoy)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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