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길을 잘못 들었다. 종종 그러한 일을 겪는 터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오랜만의 여행을 이런 사소한 일로 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여행 중 일정이란 변화가 많기 마련이고, 그 변화 자체가 즐거운 것이라고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풍경을 보고 라트리니다드(La Trinidad)에서 하룻밤 묵겠다는 생각은 재빨리 접었지만, 사가다(Sagada)까지 가려면 점심을 먹어야 했다. 꽤 고심하여 라트리니다드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레스토랑을 골랐는데 도무지 주차를 할 수 없었다. 피코 람탕 로드(Pico - Lamtang Rd)의 길은 좁고, 차는 하염없이 오는데 어영부영하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사가다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오른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차를 돌려서 다시 왼쪽 길로 돌아가면 해결되는 되는 문제이지만, 차가 심각하게 막히고 있었다. 시그널이 좋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글로브와 스마트 유심을 모두 준비해 왔건만 그 어느 것도 되지 않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고,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심란한 와중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런데 산자락을 내려와 길모퉁이를 돌면서 심란하던 마음을 순식간에 물러가게 하는 것을 만났다. 그건 다름 아닌 바셋하운드의 얼굴을 한 조각이었다.
람탕 도그 헤드(Lamtang Dog Head)는 바기오의 명물인 라이언스 헤드(Lion's Head) 비견할만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기는 사자상만큼 크지 않아도 대신 눈망울이 어여쁘다. 이 작품은 이푸가오 출신의 셀던이란 이름의 조각가가 이 지역 땅을 가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아버지인 카스트로(Rizalina Camora Castro) 씨가 아들의 작품을 보고 얼마나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런 조용한 산동네에서 갑자기 개의 머리를 한 조각을 보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점심때가 훌쩍 지나버려 배가 고프다는 것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모두 이 독특한 바셋하운드의 얼굴을 보려고 그런 듯 여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잔뜩 웃고 나니 좋은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뜻하지 않게 괜찮은 레스토랑을 발견한 것이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현대적인 분위기인 데다가 메뉴도 피자니 샐러드 따위이다. 피자 맛이야 그저 평범하지만, 샐러드의 채소는 신선하고, 백립은 적당히 잘 양념되어 있으니 식사가 즐겁다. 든든히 늦은 점심을 먹고 마음이 느긋해진 나는 목적지를 수정했다. 아예 왼쪽으로 길을 가서 타구딘(Tagudin) 쪽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타구딘 세르반테스 로드(Tagudin - Cervantes - Sabangan Rd)를 타고 사가다 쪽으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150km 정도 되던 거리를 210km로 만들어 버린 셈이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길모퉁이 어딘가에서 람탕 도그 헤드와 같은 것을 또 만날 기회가 늘어난 것뿐이었다.
The Hall of Plate
- 주소 : Purok 5, Barangay Irisan Hall, Baguio, Benguet
[필리핀 루손섬 북부 여행] 바셋하운드와 람탕 도그 헤드(Lamtang Dog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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