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것은 부지런하고 건망증도 없어서, 내가 특별히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잘 흘러간다. 월요일이라는 생각을 몇 번 하고 나면 이내 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식이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필리핀에 온 지도 10년이 가까워져 버렸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말인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에서 10년이 역학에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십간을 논할 때 숫자 10을 '하나의 굽이를 넘어선 수'로 인식하는 데서 왔다고 하는데, 필리핀 생활 10년이 가까워져도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매듭이 일단락되고 있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별로 한 일도 없는 듯하면서도 상당히 여러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간 듯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암튼, 가끔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 특별한 음식을 보면 마지막으로 먹었던 것이 10년도 전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봄철이 왔음을 알려주던 도다리쑥국이나 찬 바람 불어올 때 바싹 구워 먹던 전어의 맛이 가끔은 그립지만, 그렇다고 음식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먹던 맛을 그대로 느끼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럭저럭 비슷한 것으로 구해 먹으면 된다. 혹 비슷한 것을 구할 수 없다면 시즐링 감바스(Sizzling Gambas) 등과 같은 필리핀 음식에 흥미를 붙여봐도 될 일이다.
필리핀 음식 중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감바스를 빼놓기 어렵다. 감바스(Gambas)는 스페인어로 새우를 뜻하는 단어이다. 스페인식 감바스 요리는 새우와 마늘을 올리브유에 튀기듯 구워내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이걸 좀 더 걸쭉한 소스 형태로 만든다. 필리핀 스타일로 감바스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일단 레몬즙에 새우를 절인다.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준비하여 당근과 양파, 피망 등과 함께 새우를 볶아낸다. 기본적인 방식은 비슷하지만, 요리사에 따라 조금씩 요리 방법은 변형된다. 칠리를 넣어 좀 더 매콤하게 만들기도 하고, 바나나 케첩을 가득 넣어 좀 더 달착지근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좀 매콤하게 만들어서 뜨거운 시즐링 그릇에 올려놓은 뒤 계란 한 알을 톡 떨어트려 주는 것이다. 철판에서 올라오는 열로 계란이 새우와 함께 살짝 익는데, 새우 맛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떤 방식으로 요리하여 어떤 그릇에 담아내든 싱싱한 새우는 꼭 필요하다. 요즘 시장에 새우 가격이 너무도 올라서 과연 필리핀을 해산물이 싼 나라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냉동 새우를 사서 조리해서는 감바스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감바스를 몇 그릇이나 먹어 치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감바스라는 요리를 놓고 아주 맛있다는 생각을 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맛있게 먹기야 했지만 뭔가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지는 못하고 그냥 밥반찬 하기 좋은 음식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드디어 감바스를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깨닫게 해주는 식당을 발견했다. 이 레스토랑이 멀고 먼 불라칸 말로로스(Malolos)에 있어서 그렇지 가까운 곳에 있다면 종종 감바스를 먹으러 가고 싶을 정도이다. 양념이 강하지도 않은데 음식이 준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입안에 맴도는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해서 밥 한 공기를 더 먹어야만 할까 싶을 정도이다. 작은 오징어를 간장으로 양념하여 만든 아도보 푸싯(adobo pusit)도 간이 적당하고 오징어가 부드럽게 익어서 감칠맛이 난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지방 소도시의 음식점이라서 그런지 음식 가격도 마닐라보다 저렴한 편이다. 모처럼 흡족한 식사를 즐기고 나서 앞으로 감바스를 먹을 때마다 이 맛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필리핀 불라칸 말로로스] 유로베이크 레스토랑 베이크샵 (Eurobake Restaurant - Bakeshop)
유로베이크는 말로로스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답게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옛 방식대로 요리하면서 한결같은 맛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맛집이기 전에 빵집으로 유명하다. 엔사이마다(Ensaymada)와 이니핏 데 레체(INIPIT DE LECHE) 빵이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주역인데,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특히 피자만큼 큰 엔사이마다는 파살루봉(기념품)으로도 매우 인기라서 마카티 그린벨트 1과 그린힐즈 쇼핑몰에 파살루봉 매장을 따로 냈을 정도이다. 멋진 감바스의 맛을 낼 요리사가 없는지 마카티에서는 레스토랑은 운영하지 않고, 엔사이마다 등의 제품만 판매한다.
■ 전화번호 : +63 (44) 690-2588 / 0917-533-8250
■ 영업시간 : 오전 6시 ~ 오후 10시
■ 주소 : 369 MacArthur Highway, Tabang, Guiguinto, Bulacan
■ 위치 : 필리핀 불라칸. 말로로스
▲ 필리핀 불라칸 말로로스. 유로베이크 레스토랑 베이크샵 입구
▲ 레스토랑 내부. 건물 안쪽에 커다랗게 레스토랑 공간이 있지만 방문 당시 내부 공사 중으로 앞쪽의 카페에서만 손님을 받고 있었다.
▲ 엔사이마다는 빵 크기를 대중소 중 선택하여 살 수 있다. 빅 사이즈의 엔사이마다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다고 하니 직원이 빵을 모두 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 엔사이마다(Ensaymada). 빵 위에 솔트 에그며 이런저런 토핑이 올려져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유로베이크만의 독특한 조리법이다.
▲ 이니핏 데 레체(INIPIT DE LECHE). 너무 두껍지도 혹은 얇지도 않은 빵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빵 위를 장식한 것은 설탕인데 흡사 뽑기 비슷한 맛이 난다. 가격은 10조각에 200페소인데 선물용 상자에 담아 판매한다.
▲ 아도보 푸싯. 160페소
▲ 시즐링 감바스. 200페소
▲ 75페소의 키위 오이 주스. 가격이 저렴하여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매우 예쁘게 플레이팅을 해주었다.
▲ 테이블 위에 있던 어여쁜 꽃. 대체 이런건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 빵집에 케이크가 빠질 수 없다. 다른 메뉴에 비해 케이크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 길가 쪽으로는 파살루봉 가게가 크게 만들어져 있다.
▲ 유로베이크의 시그니처 메뉴인 엔사이마다와 이니핏 빵 외에 뿌또니 슈만, 뚜요(말린 생선) 등도 판다.
▲ 엔사이마다
▲ 마카티에 있는 유로베이크 가게. 감바스를 파는 줄 알고 일부터 찾아갔는데 레스토랑은 운영하지 않아서 매우 아쉬웠다.
▲ 메뉴판
[필리핀 불라칸] 최고의 감바스와 피자만큼 큰 엔사이마다 - 유로베이크 레스토랑(Eurobake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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