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도 떡이 있을까?
필리핀에도 한국의 떡과 비슷한 음식이 있다. 그리고 필리핀식의 떡을 먹고 싶으면 재래시장이나 쇼핑몰 내에 있는 카카닌(kakanin) 가게에 가면 된다. 카카닌은 찰기가 있는 말라킷(malagkit) 찹쌀로 만든 라이스 케이크(Rice cake)를 의미한다. 카카닌은 '쌀' 또는 '먹을 것'이란 뜻의 카닌(kanin)에서 유래한 말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을 꼽으라면 뿌또와 슈만, 피치피치, 쿠친타, 사핀사핀, 비코 등이 있다.필리핀 전통음식을 파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디저트로 카카닌을 주문하려면 꽤 비싸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10~20페소 정도에 살 수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아침으로 먹기도 하고 메리엔다(Merienda) 시간에 오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카카닌은 그 종류가 한국의 떡만큼이나 많은데 어느 것을 골라도 맛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제품 종류에 따라, 또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나 가격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모두 굉장히 단맛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운 날씨에 오래 보관을 하려니 그렇겠지만 정말 설탕을 잔뜩 넣고 달게 만드는데,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색을 입히기도 한다. 질병으로 죽는 사람 스무 명 중 한 명은 당뇨병으로 죽는다는 곳이 필리핀이라서 과다한 설탕 섭취를 하는 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돈 들이지 않고도 든든하게 배를 부르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 수레 가득 카카닌을 가져다 놓고 파는 아저씨
사실 카카닌은 장사를 처음 시작해 보려는 사람에게도 고마운 음식이다. 재룟값이 많이 들지 않아서 소자본 창업에 적당하다. 물론 따로 점포를 내려면 돈이 꽤 들겠지만, 시장에서 작게 좌판을 연다면 몇천 페소로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보통 생각하는 자본금이 5천 페소 이하일 정도이다. 하지만 적은 자본금으로 손쉽게 시작한다고 하여 장사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준비하고 판매하는 것에는 많은 노동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들어야만 하는 떡의 종류는 많은 데다가 카카닌 대부분은 찌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실제 요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려니 새벽 장사를 하려면 자정부터 불을 때어 일해야만 한다. 나처럼 장사에 익숙하지 못한 이는 단 며칠 장사에 따라나서는 것만으로도 이내 몸살이 날 정도이다. 그나마 시장에 좌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팔아야 한다. 팔 물건을 모두 공장에서 떼다가 판매만 한다고 해도 음식이 상하기 전에 다 판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떡을 판다는 것은 따호(TAHO. 순두부 비슷한 필리핀 음식)를 파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고단한 일이다. 산페르난도의 수지스 팜팡가(Susie 's Pampanga)나 불라칸의 로실리에스 비빙카(Rosalie's Bibingka), 라스피냐스의 베아스 카카닌(Bea's Kakanin)처럼 장사가 매우 잘되어서 커다란 매장 한가득 여러 가지 카카닌을 늘어놓고 대규모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우 영세한 규모이다.
카카닌 장사를 상상해보려면 1998년 방영되었던 '육남매'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된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였던 이 드라마에서 장미희 씨가 남편을 잃고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어머니 역할을 맡았었는데, 떡이 가득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떡을 팔아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나왔다. 당시 장미희 씨가 “떡 사세요”라고 외치는 억양이 매우 독특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서른세 해 만에 꿈 이야기하는 격이다. 한국에서는 떡 장사의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떡에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떡집도 기업화되었다. 벌써 10년도 전부터 떡 카페 프랜차이즈가 나왔을 정도이다. 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육 남매의 어머니가 카카닌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보살핀다. 한국에서 그러하였듯이, 작은 소쿠리에 카카닌 몇 개를 놓고 들고 다니면서 팔던 어린 소녀가 어른이 되어서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내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였다"라고 회상하게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은 아직도 좀 멀어 보인다.
■ 필리핀식 떡, 카카닌(kakanin)의 종류
카카닌은 종류가 대단히 많다. 그중에는 한국의 떡 비슷한 것도 볼 수 있는데, 겉모양만 비슷하다. 뿌또(Puto)가 한국의 증편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 맛도 같다고 기대하면 곤란하다. 맛은 물론이고 식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비코(Biko) 역시 겉모양은 약식과 비슷하지만 코코넛 밀크를 넣기 때문인지 맛이 확연히 다르다. 필리핀 떡을 먹을 때는 한국과 비슷한 맛을 기대하기보다는 그 고유의 맛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 관련 글 보기 : [필리핀 생활] 마닐라와 앙헬레스의 떡집 (떡 방앗간) 전화번호
▲ Suman sa ibos. 코코넛 잎의 심지를 빼낸 뒤 찹쌀을 속에 채워 놓고 이렇게 모양을 만드는 것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 한참을 배워서 흉내는 겨우 냈지만 단단하게 묶기란 쉽지 않았다.
▲ 뿌또와 쿠친따
▲ 뿌또.
▲ 필리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베 보라색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점을 모르겠다.
▲ Suman sa lihiya. 불라칸의 로실리에스와 같은 가게에서는 이걸 하루에 천 개 가까이 판매한다고 한다.
▲ 이걸 담아가느냐고 비닐봉지를 쓰기도 하지만 포장 자체는 대단히 친환경적이다.
▲ 언젠가 팍스 아저씨가 만들어 주었던 떡. 튀김을 하듯 쌀을 기름에 튀겨내어서 만들어낸다. 만드는 정성이야 고마웠지만, 아쉽게도 별맛은 없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걸 하고 있을 시간에 고구마나 감자를 튀기는 편이 낫다.
[필리핀 음식] 말라킷(malagkit) 찹쌀로 만드는 필리핀식 떡 카카닌(kakanin)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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