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러 번 보아서 큰 볼거리가 없음을 뻔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잠시 멈추어서 사진이라도 찍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마닐라에서 바기오(Baguio)로 가는 캐논 로드(Kennon road)에 있는 라이언스 헤드(Lion's Head)도 그중 하나이다. 한적한 거리에 세워진 높이 12m의 사자상은 상당히 눈에 띄고, 주변 풍경도 퍽 어여뻐서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을 주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엄청난 볼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자상을 보면 바기오에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을 얻게 된다. 고속도로 길이 상당히 좋아진 뒤로는 예전처럼 그렇게 큰 안도감이 없기는 하지만, 국도를 이용했던 때만 해도 사자상까지 도착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2022년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덕분에 마닐라에서 산페르난도를 지나 TPLEX에 이르기까지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도로가 한가했다. 하지만 로사리오를 지나 바기오 시티에 가까워지면서 차가 조금씩 막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걷는 것보다 천천히 가게 되었다. 이렇게 차가 막히는 이유는 뻔했다. 라이언스 헤드에 가까워진 것이다. 바람은 시원하고 하늘은 화창하니 필경 다들 사자상 주변에 차를 세우고 인증 사진을 찍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의 인증 사진이란 한두 장으로는 끝나지 않는 법이다.
사자가 바기오 시티와 대체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바기오의 시장이었던 루이스(Luis L. Lardizabal) 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1960년에 바기오에서 치러진 첫 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되었던 그는 1963년 임기를 마친 뒤에 1967년 다시 시장으로 취임했는데, 이 기간에 바기오의 명물을 만들어냈다. 원래부터 수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라임스톤(석회암)에 불과하던 것을 조각가를 불러 새롭게 단장하여 바기오의 관광명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바기오의 사자상은 1972년 첫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온갖 자연재해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때로는 지진으로, 때로는 태풍으로, 또 가끔은 사람에 의해 사자의 머리는 손상되곤 했다. 하지만 바기오 시티에서도 이 사자상만큼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꾸준히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 검은색과 노란색, 혹은 선명한 금색으로 칠해서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얼굴에 검은색을 지우고 대신 좀 더 자연스러운 부드러운 색상을 갖추게 되었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 여행] 바기오의 사자상, 라이언스 헤드(Lion's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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