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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마르코스를 몰아낸 에드사 혁명(피플 파워)과 니노이 아키노

by 필인러브 2023.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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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이 아키노 기념탑. 아키노의 죽음은 민중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1965년, 21년간 장기집권한 독재자로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임기: 1965년 12월 30일~1986년 2월 25일)가 필리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1972년 9월 21일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사회 안정화를 빌미로 비상계엄령(Martial Law)을 선포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1년 1월 계엄을 해제했지만 그의 독재정치는 계속 강행되었다.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Simeon Aquino Jr.)  

그러다가 1983년 8월 21일, 필리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였던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가 미국 망명 생활을 접고 마닐라 공항을 통해 귀국하다가 군인들에 의해 암살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필리핀의 명문가 출신으로 22살에 고향인 딸락 주의 콘셉시온(Municipality of Concepcion)에서 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불과 35세의 나이에 상원의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니노이 아키노는 반마르코스 투쟁을 주도하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그런 니노이 아키노가 고국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했다는 소식에 필리핀의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니노이 아키노의 사망은 필리핀 전역에서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니노이 아키노의 장례식 이후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이었던 코라손 아키노(Maria Corazon Cojuangco Aquino)를 중심으로 한 반마르코스 시위가 필리핀 전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대통령 선거를 강행했고, 코라손 아키노(코리 아키노)는 야당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1986년 대선은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였다. 1986년 2월 7일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는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986년 2월 22일 마닐라의 EDSA 도로 위를 가득 차지한 것은 코라손 아키노를 지지하는 의미로 노란색 리본을 든 사람들이었다. 필리핀 국민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거리로 나와 마르코스가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마르코스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필리핀 전역에서 일어나 피플 파워(People Power. 민중의 힘을 의미)를 보여주었다. 1986년 2월 22일부터 2월 25일 사이 일어난 에드사 혁명(EDSA Revolution)은 21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정권을 몰아냈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황급히 대통령직을 내놓고 이멜다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해야만 했다.

 

코리 아키노(Maria Corazon Cojuangco Aquino)

그리고 피플 파워는 평범한 주부였던 코라손 아키노(코리 아키노)를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코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다수 필리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 자리에 오른 코라손 아키노는 독재정권의 재발을 막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하도록 했다. 여담이지만,  취임 이듬해인 1987년에는 공화국법(REPUBLIC ACT NO. 6639)을 하나 발표했는데, 이 공화국법이 바로 마닐라 국제공항(Manila International Airport)의 명칭을 니노이 아키노 국제 공항(NAIA. Ninoy Aquino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다.

 

노이노이 아키노(Benigno Simeon "Noynoy" Cojuangco Aquino III)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과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필리핀 제15대 대통령이었던 베니그노 아키노 3세(노이노이 아키노)이다. 노이노이 아키노 전 대통령은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가 2009년 결장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하자 2010년 대선에 뒤늦게 뛰어들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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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아키노의 모습(좌) 총탄에 쓰러진 모습(우) - 사진 출처: Presidential Museum and Library PH
마닐라공항의 정식 이름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이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던 니노이 아키노를 기리기 위해 '마닐라공항'의 이름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으로 바꾸었다.
니노이 아키노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500페소 지폐의 앞면을 보면 된다. 아키노의 얼굴이 에드사 혁명의 풍경과 함께 도안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여성이 바로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다.
에드사 혁명 기념물(EDSA People Power Monument)
리잘파크 근처에 세워진 베니그노 아키노 기념물(Benigno S. Aquino Jr. Historical Marker & Monument)
베니그노 아키노 2세(Benigno Aquino Jr)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마르코스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지도자로 필리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코라손 아키노(Maria Corazon Cojuangco Aquino)

※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Republic Act No. 6639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니노이 아키노 기념물

[필리핀 역사] 마르코스를 몰아낸 에드사 혁명(피플 파워)과 니노이 아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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