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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이해하기/필리핀 역사•정치

필리핀 역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도착한 곳은 세부가 아닌 호몬혼섬

by 필인러브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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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티 아얄라 박물관(Ayala Museum)에 전시된 디오라마. 필리핀 최초의 부활절 미사를 묘사하고 있다.

 

 

1519년 9월 20일,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왕의 후원으로 향신료를 찾아 에스파냐(영어식 국명은 스페인)를 떠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건너 54,000km를 항해한 뒤 1521년 3월 중순이 되어서야 필리핀에 도착했다. 세부 시티의 산토니뇨 대성당 옆에 있는 '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가 관광지로 워낙 유명하여서 마젤란하면 세부(Cebu)부터 떠오르지만, 실상 마젤란이 필리핀 도착 후 처음 상륙한 곳은 세부가 아니다. 필리핀 중부 비사야 지방 서쪽에 있는 동사마르주(Province of Eastern Samar)의 호몬혼섬이다. 


호몬혼섬(Homonhon Island)

- 주소: Guiuan, Eastern Samar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0년~1521년)은 3년에 가까운 긴 항해 끝에 필리핀의 레이테만(Leyte Gulf)에 도착했다. 당시 항해사가 멀리 넓은 사마르(Samar)의 육지가 보이는 것을 확인했지만, 마젤란은 이곳이 미지의 낯선 땅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배의 안전을 위해 호몬혼섬(Homonhon Island)의 한적한 해변에 닻을 내리고 배를 정박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은 마젤란은 며칠 뒤 인근에 있는 술루안섬(Suluan Island) 사람들과 만나 배에 있던 물건을 물고기며 코코넛 등과 교환했고, 이렇게 술루안섬 사람들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원정대와 교류한 최초의 필리핀인이 되었다. 그런데 동사마르주에는 마젤란이 도착한 호몬혼섬보다 더 유명한 섬이 하나 있다. 호몬혼섬에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홀과 수리가오 사이에 아주 작은 섬이 있는데, 바로 마젤란이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는 리마사와섬이다.

요즘은 호문혼섬에도 인구 4천 명 정도가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무인도에 가까웠다고 한다.


리마사와섬(Limasawa Island)

- 주소: Limasawa, Southern Leyte

'필리핀 가톨릭 종교의 발상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리마사와섬은 인구 6천 명 정도가 살아가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섬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거리가 고작 8km밖에 되지 않는다. 바닷물이 파랗다 못해서 초록색이라는 리마사와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과 농업으로 살아가지만, 몇몇은 성지순례자와 다이버를 대상으로 숙박시설을 운영하기도 한다. 예전에 이곳에 가보고 싶어 타클로반 지역에 있는 로컬 여행사로 교통편을 문의한 적이 있는데, 타클로반 공항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달리면 항구(Padre Burgos Pier)가 나오고 이 항구에서 배를 타면 섬까지 1시간가량 걸린다고 했다.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데도 필리핀 사람들이 기꺼이 리마사와 섬에 가보기를 원하는 것은 이곳이 필리핀 최초의 부활절 미사 장소(First Easter Mass)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따르면 마젤란은 1521년 3월 31일에 이곳 섬에 와서 페드로 데 발데라마 신부와 함께 가톨릭 미사를 거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섬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세우고 세부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젤란이 리와사와에 십자가를 세운 순간 필리핀 기독교(가톨릭)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리와사와 아일랜드(Limasawa Island)는 섬 이름의 유래가 퍽 재밌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젤란이 십자가를 세웠을 당시 섬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섬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을 통치자였던 라자(Rajah)에게 아내가 몇 명 있느냐는 질문이라고 오해했다고 한다. 리마사와 사람들은 낯선 이의 질문에  '우리 라자에게는 아내가 다섯 명이 있다'는 뜻에서 '리마스 아사와(lima’y asawa)'라고 답했고, 스페인 사람은 섬의 이름을 리와사마(Limasawa)라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순전히 의사소통의 문제로 섬의 이름이 리마사와가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막탄전투를 묘사한 디오라마.  스페인 입장에서 보면 미개한 원주민에게 당한 것으로 보일 터이지만, 라푸라푸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 침략자에 맞서 싸우고 승리한 셈이다.

 

세부로 간 마젤란

부활절 미사를 마친 마젤란은 리마사와에 계속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짐을 꾸려 며칠 뒤 바로 세부로 출발했다. 순풍이었는지 얼마 후 바로 세부에 도착한 마젤란은 이 지역을 다스리던 라자 후마본(Rajah Humabon)과 친교를 다지고 그를 기독교(가톨릭)로 개종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라자 후마본과 그 일족은 1521년 4월에 필리핀인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았는데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세부 시티에 있는 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다. 당연히 500년 전에 만든 나무 십자가가 여전히 남아 있을 리는 없으니 관광객이 보는 것은 복제품이다. 그리고 마젤란이 라자 후미본과 그의 부하들의 세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선물했다는 아기 예수상(산토니뇨, Santo Niño)은 세부의 시눌록 축제(Sinulog Festival)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만 막탄섬을 다스리던 라푸라푸(Lapu-Lapu)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 마젤란의 실수였다.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 그는 1521년 4월 27일 있었던 막탄전투에서 전사한다. 마젤란이 사망하자 살아남은 선원들은 콘셉시온 호를 버리고 남은 배를 정비하여 귀국,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일주였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막탄전투에서 사망하여 에스파냐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마젤란의 노예이자 통역사였던 엔리케가 세계 일주를 한 최초의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리핀 마닐라 리잘파크에 있던 라푸라푸의 동상
MRT Magallanes Station
마닐라의 지상철 마갈라네스역(MRT Magallanes Station). Magallanes는 마젤란의 스페인식 표기라고 한다. 마젤란은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으나 스페인으로 귀화했다. 포르투갈어 이름은 페르낭 데 마갈랴잉시(Fernando de Magalhes)이다.

 

※ 위의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Philippines First Circumnavigation Map

· Province of Southern Leyte: HISTORY OF LIMASAWA
· ABS-CBN News: Limasawa, not Butuan: Gov’t historians affirm site of 1521 Easter Sunday mass in PH

리잘공원에 있는 라푸라푸의 동상. 이 작품에는 자유의 파수꾼(Sentinel of Freedom)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필리핀 역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도착한 곳은 세부가 아닌 호몬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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